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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 황인숙





강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나문희처럼 살아라를 쓰면서 생각이 나서. <강>은 감상을 붙이는 게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질 시다. 모든 시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서정시는 읽는 그 순간 아쌀하게 와닿는 맛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강>은 아쌀하고, 발표된 후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시가 요즘 시대 특유의 '쿨'한 정서를 대변한 탓이 크다는 게 언론에서 설명하는 인기의 이유였다. 아래는 내가 작년 겨울 페이스북에 적어두었던 황인숙의 삽화다. 시인은 발레교실에서 자신의 강을 발견했던 걸까. 



배철수의 음캠이 끝나는데, 난데없이 시인 황인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MBC FM4U의 '잠깐만' 코너. 명사들이 나와서 잠시 훈훈한 얘기를 들려주는 시간. "우~ 우리 이젠 함께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황인숙, 어리숙하고 어눌하며 '문학소녀'같은 말투로 조곤조곤 말함.

"제가 요새 발레를 배우거든요. 몸을 찢는 게 힘들면서도 상쾌해요. 선생님들이 말해요. 자신이 이만큼 할 수 있겠다 하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야 한다고. 자신의 한계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보는 것, 우리가 한번쯤 해봐야하는 경험이 아닐까요?"


대충 이런 말을 했는데,

좋았다. 다리를 찢고 있다는 50대의 女시인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고,

그녀가 무슨 말을 했든간에 난 암요암요 하고 고갤 끄덕였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