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온 수원 영통구 당선자의 딸 '랜선효녀'와 미디어오늘 관련 논란을 읽었다. 미디어오늘에서 랜선효녀의 실제 나이에 관한 의혹을 확인하면서 버젓이 그녀의 실명을 기사에 올렸던 것. 이 기사가 프라이버시 논란을 낳고, 미디어오늘은 SNS 이용자를 중심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는 중이라고 한다.
현재 기사에서 '랜선효녀'의 실명은 삭제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박광온 딸 ‘랜선효녀’ 얼굴도 나이도 신비주의 전략?>이다. 이 기사가 많은 항의를 받자,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블로그에 사과글을 올렸다. 실명을 올린 건 백 번 잘못했지만, 나이를 정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취재는 정당했다는 요지다.
관련 논란과 미디어오늘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글은 뉴스고로케를 운영하는 RAINYGIRL님의 이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태에 대해 그야말로 '총정리'한 좋은 글이었고, 나도 많이 배웠다. 한윤형 기자의 기사는 <‘랜선효녀’ 몇 살인지 알아내 '조회수' 좀 올리셨나요?>이다.
조회수와 파파라치즘인가... 정녕 그런가.
다만 몇 가지 생각거리가 있다. 미디어오늘의 그 기사는 그저 인터뷰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형편없는 기사다. 그리고 설령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기사는 형편없었다. 이게 더 중요하다. 나이를 정직하게 말하지 않았더라, 에서 끝나는 기사는 허섭하고 멍청한 기사다. 아마도 정치적 성향이 '진보'로 분류되는 많은 독자들은 미디어오늘이란 매체비평지의 이름에 걸었던 나름의 기대가 있었을 게다. 그게 더 큰 분노와 조롱의 이유일 테고.
그러나 나는 '랜선효녀'가 자신의 나이를 속인, 아니, 속였다기보단 어쨌든 간에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숨기려 했던 팩트와 이유는 충분히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 기삿거리였다고 생각한다. 나부터도 그랬고 말이다. 이 지점에서만은 난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의 편이다. 그이의 사과하는 방식에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RAINYGIRL님과 미디어스 한윤형 기자는 이런 의혹 제기를 조회수를 올리려는 야비한 술수이자 파파라치즘이라고 쏘아붙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랜선효녀'는 공인이 아니며, 아버지와는 독립된 별개의 인격체이므로, 그녀가 밝힌 나이가 그녀의 실제 나이와 달랐다고 하더라도 언론은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야 하는가? 그녀의 '나이 보정'이 아버지의 당선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던 걸 증명할 수 없으므로, 이 사실은 그저 취재하면 안 될 '가십거리'로 남겨둬야 하는가?
아니, 그건 그렇고, 진보언론은 왜 '가십'을 좀 취재하면 안 될까? 진보언론은 왜 의혹제기의 기사 형식을 취하면 안 되는 걸까? (이 말이 취재원에 대한 프라이버시 침해와, '우리는 조중동처럼 불법을 저지르진 않았잖아'라는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의 병크짓을 옹호하려는 게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한윤형 기자는 이 사안이 '공익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편, '랜선효녀'의 활동이 아버지의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는 전제를 거부한다. 말하자면, 한윤형은 그녀를 자연인에 가까운 SNS의 특정 인명으로 놓아두고 싶어하는 듯하다. 미디어오늘의 실명 공개라는 개바보스러운 짓 때문에 묻혔지만, 나는 그러한 한윤형식의 논지 전개가 야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안을 놓고 공익성이니 뭐니 따지면서 "당선에 도움되었다는 '공적'인 사실도 검증 못하면서 미디어오늘 품위없이 왜 그럼?"이란 것은 결국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본다.
애초에 '랜선효녀'를 인터뷰하고 그녀를 <미디어스>의 지면에 소개했던 것은 한윤형이었다. <박광온 후보 딸은 하필 왜 ‘SNS에서 효도’를 하는걸까?>라는 제목으로 말이다. 결국 제도권 언론에 실린 이 인터뷰는, 그렇다면 한윤형 나름의 '공익적인' 판단 기준으로 기획되고 진행된 것이었을 게다. '랜선효녀'가 아버지의 당선에 기여하진 못했을지라도, 그녀가 나름의 사회적인 함의를 갖고 있고, 분명 선거기간 열풍의 한 축에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함의와 열풍에 '도덕적인' 의문을 던져보는 건 왜 공익적이지 않단 말인가? 선거에 이익이 된 것을 못 밝혀내겠으면, 이 주제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마란 식의 태도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냥 캐병신 기사다. 거기까지만 하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이 주제를 이처럼 병신처럼 다룬 미디어오늘은 저주받으라... (...) 뭣보다도 인터뷰이와의 라포 형성이 거지같이 된 것 같다. 차라리 인터뷰를 하지 말고 칼럼과 같은 형태로 풀어내는 게 어땠을지... 어쨌거나 나는 미디어오늘의 기사에 인용된 "30세. 그것은 부모에게서 한참 전에 떠났어야 할 시기. 박효도는 이제 와서 대체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랜선효녀의 선거날 트윗은 역시 의뭉스럽다고 생각한다. 서른이라는 '거짓말'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28세라고 한다.
그것이 박광온 당선에 어떤 당선을 주었느냐고? ('얼마나 공적이냐고?')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나 좀 떠들썩했지 뭘...'라는 태도 또한 역시 야비하다. 틈만 나면 SNS의 여론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쪽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각으로라면, 랜선효녀의 저 말은 좀 무게감 있는 '자기왜곡'이 된다. 적어도 '독립적인 인격으로 살고 싶어하는 그녀의 욕망을 인정하라'는 식의 나이브한 말은 인정될 수 없다.
그녀의 나이 의혹은 분명히 '가십'에 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가십거리에서 SNS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의문을 읽을수도 있고, 정치인 자녀의 선거와 스토리텔링을 읽을수도 있으며, 20대와 30대란 상징이 지닌 사회문화적 격절을 읽을수도 있다. 다른 정치인 자녀들과 그녀를 비교하는 방식도 있겠고, 우리나라에서 막 시작된 정치인 자녀의 선거마케팅과 해외 정치인 자녀들의 나이와 세대를 비교할수도 있겠다. 아니면 랜선효녀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분석하든지... 이야깃거리는 많다.
정리하자. 저 기사는 그냥 언론윤리를 저버린 병신같은 기사다.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의 "백번 사과한다. 그렇지만 너희도 왈왈왈 그만해라" 하는 사과가 진정성 없는 사과인 것도 맞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난 그녀의 나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각을 '反공익'이자 파파라치즘으로 매도하면서, 하물며 무슨 미디어오늘이 무슨 공익수호윤리보도지가 되었던 것마냥 '대. 실. 망'을 연호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슨 이런 논쟁적인 사안만 생기면 득달처럼 달려들며 장광설을 풀어놓고 대중들을 만족시키는 한윤형도... 흠.
별로 상관없지만, 나는 정치인 자녀들이 맘에 안 ㄷ...
마지막으로, 나는 '랜선효녀'를 비롯해서 정치인 자녀가 나와서 지금처럼 꼴값을 떠는 게 싫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뭐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것도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가 싫다. (솔까 그런 감정이 이런 글을 쓰게 한 원인이었겠지...)
랜선효녀의 저 약삭빠른 트윗들에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분명 재기발랄하며 매력도 있는데, 그건 그냥 마케팅적으로 똑똑한 거지 그게 무슨 세련된 트렌드마냥 언론에 대서특필되는지... 어이가 없었다. (정책선거 정책선거 누가 노래불렀음?) (그럴 거면 내 트윗들이나 좀 리트윗하지?)
조희연 아들이 썼다는 글도 무슨 내가 쓴 자기소개서의 부모님 찬양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나도 자기소개서에서는 부모님이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분이다.) 읽고 나서 엄청나게 벙쩠던 기억이 난다. 정말 감동적이고 속 깊은 글일 줄 알았는데... 조희연이 실제로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식이 자신의 아버지를 대놓고 예찬하는 건(거기다가 그 예찬이 또 다시 지지자들에게 예찬되는 건) 아무래도 내 체질이 아니다.
내가 지금 자식놈들 과거도 못 치르게 했다는 연암 박지원의 얘기를 쓰면 완전히 꼰대가 될 수도 있겠으나... (외고 얘기를 하면 보수꼴통이라고 욕먹겠지. 흠...) 그냥 그렇다. 난 자식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정치인 부모와 같이 평소에도 지역구민들의 손을 잡고, 선거의 가장 핫빠리를 자처해서 묵묵히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부모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서 나름의 공부를 쌓고 그걸로 부모와 유권자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어쨌거나 랜선효녀는 정말 똑똑한 '효녀'였으며, 정치인의 가족은 언제나 선거의 꽃이다. 그렇지만 "난 아버지의 비밀을 알지. 머리둘레..." "박광온 씨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도덕 교과서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보좌관들이 말렸어여..." 뭐 이런 식의 촌스러운 정치적 홍보와 유머는 내겐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래서 내가 이 신세 이 꼴인지도 모르겠다. 내 트윗 계정 폭파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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