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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DJ의 야밤선곡

쉬르양강(旭日阳刚) - 봄에(春天里)







일전에 앤소니 퀸 주연의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며 난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앤소니 퀸은 이 영화에서 '조르바의 현신'이라 일컬어질 만큼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쳤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수십 번씩 부여잡고 찬미하던 조르바가 막상 화면에 등장하자, 뭐랄까, 굉장히 왜소하고, 그 정신적 세계가 납작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내 상상력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소설에서 그려지는 조르바의 모습에서 그만큼 광활한 매력이 넘친다는 것도 지적해둬야 한다. 장편소설을 두 시간 분량의 영화로 압축하다 보니, 우리는 앤소니 퀸 '정도'(의 최고의 배우)에서 조르바의 편린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난 '중국 농민공 밴드'라 불리는 쉬르양강의 저 노래하는 모습이 정말로 꼭 조르바 같다. 내가 이들을 접했던 건 재작년 MBC 9시 뉴스를 통해서였다. 갑자기 TV에서 이들의 노래하는 모습(유투브 영상)과 <봄에>의 가사가 흘러나오는데, 눈가가 '급시큰'해지면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 없게 되더라도 과거 행복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해줘, 어느 날 내가 소리없이 떠나게 되면 나를 봄 안에 묻어줘…” 이런 감상적인 노랫말을, 웃통을 벗고, 한 손엔 담배를 들고, 온몸으로 불러제끼는 모습. 어떤 원형질의 '남자'의 냄새, '음악'의 냄새가 훅 느껴졌다. 영상에 나오는 둘은 올해 서른살을 맞이하는 류강(劉剛), 마흔다섯살인 왕쉬(王旭)다. 두 사람은 베이징에서 보일러실과 창고 노동자, 과일행상, 아파트 경비원 등을 전전하는 '농민공'(농촌에서 이탈한 중국의 도시노동자)이다. 



2010년 같은 시기의 한겨레 기사와 2011년 SBS 기사에 따르면, 둘 다 방값을 제때 내고 가족을 부양하기조차 힘들 만큼 빠듯하게 살아가지만, 젊은 시절부터 좋아했던 음악만은 놓지 않았다. 지하철역 통로에서 나란히 연주를 하다 만나게 돼 2005년 의기투합한 이들 쉬르양강(둘의 이름을 합쳤다고). 2010년 9월 둘의 친구가 베이징 골방에서 찍은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 노래들을 보고 환호했다. 둘은 11월 CCTV가 주최한 스타발굴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중국판 허각")했고, 자신들이 동경했던 <봄에>의 주인공 중국 록스타 왕펑(汪峰)의 콘써트에 초청돼 8만 명을 앞에 두고 노랠 부르기도 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들에 대해 "중국 사회 밑바닥 농민공의 적나라한 삶이 중국인의 가장 민감한 곳을 울리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평했다. 



소설 속 조르바도 젊은 시절, 심지어 늙은이가 되어서까지 세인의 눈으로 보기엔 '별볼일 없는'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사실 '별볼일 없음'과 '별볼일 없음'을 구분하는 소시민들의 관념 자체를 찢어버리는 존재다. 그는 탄광 속에서 삽질을 할 땐 자신이 딛고 선 광맥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인간이었고, 여자와 사랑을 나눌 땐 (여자에게 미치는) 자신 안의 "악마"에게 영혼을 바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조르바는 그럴 듯한 관념의 외피를 두르고 자행되는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갈파할 줄 알고, 한 과부의 비천한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맨몸뚱이로 군중과 맞설 '힘'을 지닌 인간이었다. 더불어 그는 밤바다에 환장해서 미친 듯이 춤출 줄 알고, 자신의 산츄리가 내는 천상의 소리를 사랑하는 인간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정확히 니체적인 차원에서) '온전한 개인'이었다.



도시빈민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국 농민공의 수가 2억 3천 만 명을 넘어섰다. 공산주의 국가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저 탄탄한 맨몸이 내지르는 <봄에>에 이념의 허상, 밥벌이의 지겨움, 음악의 힘, 그리고 남자의 슬픔이 한데 들끓는 것만 같다. 그 들끓음은 (세상의 윤리적 기준에 비춰봤을 때) 결코 깨끗하거나 선하지 않고, 일관되지도 않으리라. 누구나 조르바처럼 살 순 있어도, 아무나 조르바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봄에(春天里) / 왕펑(汪峰)


hái jìdé xǔduōnián qián de chūntiān

还记得许多年前的春天 

오래전 봄날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nàshí de wǒ hái méi jiǎn qù chángfà

那时的我还没剪去长发 

그때의 나는 긴 머리를 자르지 않았었어


méiyǒu xìnyòngkǎ yě méiyǒu tā

没有信用卡也没有她 

신용카드도 없었고 그녀도 없었어


méiyǒu 24 xiǎoshí rèshuǐ de jiā

没有24小时热水的家 

24시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집도 없었어


kě dāngchū de wǒ shì nàme kuàilè

可当初的我是那么快乐 

그렇지만 그 때 나는 무척 즐거웠지


suīrán zhǐyǒu yìbǎ pò mù jítā

虽然只有一把破木吉他 

비록 낡은 기타 하나 뿐이었지만


zài Jiēshàng zài qiáo xià zài tiányě zhōng

在街上在桥下在田野中 

거리에서 다리 아래에서 들판에서


chàngzhe nà wúrénwènjīn de gēyáo

唱着那无人问津的歌谣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불렀어

  


rúguǒ yǒuyìtiān wǒ lǎo wúsuǒ yī

如果有一天我老无所依 

만일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더라도


qǐng bǎ wǒ liúzài zài nàshí guāng lǐ

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 

바라건대 과거 행복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해 줘


rúguǒ yǒuyìtiān wǒ qiǎoránlíqù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 

만일 어느날 내가 소리 없이 떠나게 된다면


qǐng bǎ wǒ máizài zhè chūntiān lǐ

请把我埋在这春天里 

바라건대 나를 봄 날에 묻어 줘

 

 

hái jìdé nàxiē jìmò de chūntiān

还记得那些寂寞的春天 

외로웠던 봄날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nàshí de wǒ hái méi liú qǐ húxū

那时的我还没留起胡须 

그 때의 나는 아직 수염이 자라지 않았어


méiyǒu qíngrénjié yě méiyǒu lǐwù

没有情人节也没有礼物 

발렌타인 데이도 없었고 선물도 없었어


méiyǒu wǒ nà kě'ài de xiǎo gōngzhǔ

没有我那可爱的小公主 

아주 귀여운 작은 공주님도 없었어


kě wǒ juéde yíqiè méi nàme zāo

可我觉得一切没那么糟 

그렇지만 모든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suīrán wǒ zhǐyǒu duì ài de huànxiǎng

虽然我只有对爱的幻想 

비록 사랑에 대한 환상뿐이었지만


zài qīngchén zài yèwǎn zài fēng zhōng

在清晨在夜晚在风中 

새벽에 밤중에 바람 속에서


chàngzhe nà wúrénwènjīn de gēyáo

唱着那无人问津的歌谣 

아무도 귀 귀울이지 않는 노래를 불렀어

 

  

yěxǔ yǒuyìtiān wǒ lǎo wúsuǒ yī

也许有一天我老无所依 

아마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 없게 되겠지


qǐng bǎ wǒ liúzài zài nàshí guāng lǐ

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 

바라건대 과거 행복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해 줘


rúguǒ yǒuyìtiān wǒ qiǎoránlíqù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 

만일 어느날 내가 소리 없이 떠나게 된다면


qǐng bǎ wǒ máizài zhè chūntiān lǐ

请把我埋在这春天里 

바라건대 나를 봄 날에 묻어 줘

  

 

níngshìzhe cǐkè lànmàn de chūntiān

凝视着此刻烂漫的春天 

아름다운 지금의 봄 날을 바라보며


yīrán xiàng nàshí wēnnuǎn de múyàng

依然象那时温暖的模样 

여전히 그 때의 따스한 모습을 흉내내고 있어


wǒ jiǎn qù chángfà liú qǐ le húxū

我剪去长发留起了胡须 

긴 머리를 자르고 수염을 길렀어


céngjīng de kǔtòng dōu suí fēng ér qù

曾经的苦痛都随风而去 

지난 날의 고통은 모두 바람을 따라 사라졌어


kě wǒ gǎnjué què shì nàme bēishāng

可我感觉却是那么悲伤 

하지만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아


suìyuè liúgěi wǒ gèng shēn de míwǎng

岁月留给我更深的迷惘 

세월은 나를 더 곤혹스럽게 하고


zài zhè yángguāngmíngmèi de chūntiān lǐ

在这阳光明媚的春天里 

이토록 아름다운 봄 날에


wǒ de yǎnlèi rěnbúzhù de liútǎng

我的眼泪忍不住的流淌

내 눈물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 내렸어

 

  

yěxǔ yǒuyìtiān wǒ lǎo wúsuǒ yī

也许有一天我老无所依 

아마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 없게 되겠


qǐng bǎ wǒ liúzài zài nàshí guāng lǐ

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 

바라건대 과거 행복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해 줘


rúguǒ yǒuyìtiān wǒ qiǎoránlíqù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 

만일 어느날 내가 소리 없이 떠나게 된다면


qǐng bǎ wǒ máizài zhè chūntiān lǐ

请把我埋在这春天里 

바라건대 나를 봄 날에 묻어 줘

  


rúguǒ yǒuyìtiān wǒ lǎo wúsuǒ yī

如果有一天我老无所依 

만일 어느날 내가 늙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더라도


qǐng bǎ wǒ liúzài zài nàshí guāng lǐ

请把我留在在那时光里 

바라건대 과거 행복했던 시간 속에 머물게 해 줘


rúguǒ yǒuyìtiān wǒ qiǎoránlíqù

如果有一天我悄然离去 

만일 어느날 내가 소리 없이 떠나게 된다면


qǐng bǎ wǒ máizài zhè chūntiān lǐ

请把我埋在这春天里 

바라건대 나를 봄 날에 묻어 줘

 


chūntiān lǐ

春天里 

봄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