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벗고 들어가는 곳 / 황지우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漁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던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돌아보면, 생을 쇼부칠 수 있는 기회는 늘 널려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니 나는, 절대로 돌아보지 않는다. 돌아보지 못한다. 열대어들이 뻐끔거리듯 우리도 그냥 산다. 뜬소문처럼 산다. 사니깐 산다. 사람들은 자신을 죽일 결심을 하고서야 신발을 벗는다. 인생이 망가지고서야 비로소 아, 내가 헛된 것만을 밟았었구나, 생각한 후에, 주섬주섬 벗은 신발을 정리한다. 수십 년 동안 어긋나버린 삶은 당연히 정돈되지 않는다. 그러니깐 신발이라도 가지런하게 하려는 것이다. 무엇도 바로잡혀지지 않으니, 손에 닿는 신발이라도. 삶을 바로잡고 싶어하는 욕망과 삶을 창조하고 싶어하는 욕망, 그 근원은 아마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삶을 끝장내고 싶어하는 욕망도 마찬가지다.
죽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로잡기란 그렇게 힘들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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