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문: "현장으로 돌아가라"
# 현직 경찰관들이 단체로 <두개의 문>을 관람한다는 소식은 감동적이다. 서울의 경찰관들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박원순 시장이 보여주는 '담대한' 행보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도 이 영화를 봤다.) 막상 영화를 보던 극장 안에서 난 그 세련된 영상미와 웅장한 효과음, 거창한 자막처리 등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우스꽝스런 루이 보나파르트에 부쳤던 말을 바꾼다면,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영화로" 넘어가는 스포트라이트의 진부한 경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작품에 필수적인 영화적 장치들은, 별 수 없이 2009년 1월 20일의 "생지옥"을 미화할 수밖에 없는 거 아냐?
# 그러나 영화관을 나온 후 이내 난 이러한 자의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비극'을 겪지 않은 우리들 '제3자'는 영화(또는 '잔인한 소극')가 공명시키는 개인의 감수성과 사회적 반향의 힘을 믿어야 할 것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으므로. 특히 정치 영역(서울시장)과 가해자의 입장(경찰관)을 대변하는 주체가 '두개의 문' 열풍에 직간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이것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찾기 힘들었던 상당히 건강한 사회적 환류일 것이며, 지난해 유행했던 영화저널리즘의 연장선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 '제3자'들의 영화제작 · 관람이라는 '제의(祭儀)'를 밉게 보던 내 마음은, 참사 후 촛불미사 자리에나 겨우 얼굴을 비쳤던 게으른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 아마 영화를 보는 관객 대다수가 무의식적으로라도 '기록의 위대한 힘'을 느꼈을 법하다. 영화의 잉태가 가능케 했던 자료를 남긴 인터넷방송 칼라TV와 사자후TV의 "길거리 언론인"들에게 고마웠다. 나는 경찰의 채증용 비디오카메라는 상당히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어떻게 비난해야 할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영화는 헐리웃 액션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스펙터클'하며, 그 현장의 처절함은 법정 녹음기록, 과거의 신문들, 관계자 인터뷰, 섬세한 재연 등으로 냉정하게 감싸안긴다. <두개의 문>의 뛰어난 점은 1월 18일 김석기의 경찰청장 내정으로부터 촉발된 2박 3일간의 비극을 두 줄기의 서사를 통해 복원시킨 그 '촘촘함'에 있다. 구성의 촘촘함은 기록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오래도록 갈고닦여진 영화적 감수성이 없이는 생길 수 없다. 연분홍치마의 두 감독, 정말 장난이 아니다.
# '졸'(卒)들을 심문해서 어쩔 것인가? 김형태 변호사도 반복해서 던진 말이고,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우리에게 남은 질문이다. 담당검사는 법정에 선 젊은 특공대원에게 죽은 동료를 들먹이며 "증인은 그 (생지옥과 같은) 자리를 피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몰아붙였다. 특공대원은 이 사태의 책임이 농성자한테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런 질문과 대답은 명백한 헛소리다. 영화의 말미, 어느 진상조사단원도 "가해자들이 사실은 더 상처받았을 게 분명하다…훗날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다분히 감상적인 마무리 멘트를 남겼다. 이 또한 구구한 해설일 뿐이다. 난 그보단 "다 죽어! …올라오지 마"라는 철거민의 (사법적으로 중요한,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 마디 외침과, 그 외침을 놓고 법정에서 '변심(變心)'한 제1제대장의 더듬거리는 고백에 훨씬 더 울컥했다. 이념과, 추모와, 정권비판과, 훗날 밝혀질 진실에 대한 강조보다도, 현장이다. 현장이어야 한다. 현장에 진짜가 있다. <두개의 문>의 교훈이다.
# 그리고, 용산을 낳은 건 더러운 이념과 욕망이었지만, 참사를 낳은 것은 당일 아침 '7시 18분'의 그 어긋난 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지휘관 한 사람이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더라면! 경찰의 총체적 무지와 정권에 대한 엎드림을 상징하는 이 영화의 제목과, 경찰의 눈으로 바라본 용산참사의 구도인 영화 포스터를 다시 상기해보라. 그러니 (우리 모두의) 자유에는 앞서 간 자들의 피가 섞여있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닐지라도, 그보다는 정말로 피를 부른 7시 18분의 그 악다구니 같은 순간이 우리 가슴을 더 절망적으로 만들수도 있다. (또는, 그래야 한다.) 세상은 누군가의 피흘림으로 뒤바뀐다는 뜨거운 신화적 믿음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비유컨대, 경찰은 '적'이 아니라 '인간'이고 '우리 국민'이다. 내가 울컥했던 장면처럼, 현장의 철거민은 뛰어올라가는 경찰을 사지(死地)에 내몰지 않았다. 바로 이게 내가 느꼈던 이 영화의 무게감의 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