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LUMBER

설특집 노인들만 사는 마을 8년의 기록 (MBC 스페셜)

Alyosha 2011. 10. 7. 19:50






올해 초 설특집으로 방영됐던 MBC 스페셜이다. 메모해둔 게 있어 옮겨둘라구. 10월 초 며칠간의 날씨는 환장할 것처럼 좋았는데, 북촌 가까이에서 돈 벌고 있는 나는, 환장해야 할 때 환장하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억눌려서 이러고 있다. 내 미래를 위한 의무감만 잔뜩 머릿속에 구겨넣은 채 이러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방송에서 읊조리던 노인네들의 말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아깝다 내 청춘아 다시 한번 못 오느냐.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서 청춘 가니 오는 백발을 어쩔까나 


같은 노랫가사들 말이다. 전남 고흥군 두원면 예동마을. 2004년 당시, 37분의 노인들만 살고 있었던 마을을 2010년 9월 제작진이 다시 찾자, 마을사람들 여럿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가셨다." 막내뻘인 예순다섯 이장님이 마을의 꼬부랑 꼬부랑한 할머님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고 계셨다. 죽음은 그분들 말씀처럼 "받아놓은 밥상"인 것인가. 죽기 싫다고, 늙기 싫다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지어니. 


새내끼 백발은 쓸 데 있어도 노인네 백발은 쓸 데가 없네


노인은 생물학적으로 대도시와 어울리지 않는다. 도시의 날카로운 신경과 개인주의적 감수성은 그분들의 연약한 육체와 심성을 배려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우리들이라고 해서, 영원히 "관절엔 역시 트라스트!!" 따위를 무릎팍에 붙이지 않을 순 없을 것이기에, 다시 말해 '늙음'은 자연적인 순리이기에, 우리는 그분들의 순선한 늙음을 보고 감동하는 것이다.



나 죽으면 2층도 말고, 3층도 말고, 4층 5층 상여에 날 띄워라.


'손가락이 흰' 우리들은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고단한 삶이었을 꺼다. 좋은 거라면 쥐약까지도 먹는다던 할머니가 손수 끓인 약초오리탕을 덜덜거리는 손가락으로 떠먹던 장면이 생각난다. 65년 수절 과부 할머니의 고운 느낌도 기억난다. 젊은 시절 난봉질을 일삼던 할아버지를 내치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밥 멕여주고 빨래해주던 어느 할머니도. 5층 10층 꽃상여에 태워드려야 하리 모두들.


산천이 고와서 내가 여기를 왔는가 임 사는 곳이라 내가 여기를 왔네


그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문장과 노래들 하나하나가 모두 시적이었는데, 산업사회 이전의 예술이란 시와 노래와 말과 이야기가 외따로 떨어져있지 않았다는 것이지. 양반님들이 유산으로 남겨주신 서릿발 같은 유교적 미학도 좋겠다만, 나는 아무래도 제가 살아온 몸뚱아리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저 주름살 잡힌 美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




ㅋㅋ 아, 그리고 얘는 예동 노인마을에서 26년만에 태어난 다은이(2008년 출생)라고 한다. 딱 닷새만 앓고 죽으라는 말이 새해 덕담이라는 노인마을에서, 저 뽀샤시하고 탐스런 사과 같은 아이가 태어났다. 불쑥 태어났다. 이 세상에 왔다. 그리고 이 탄생이 만약 詩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 예술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