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커스

용기에 대하여

Alyosha 2013. 6. 1. 23:21








어느덧 2013년도 5달이 지났네요. 앞으로 15일만 있으면 1년의 반이 지나는 거니 참 무거운 마음이 듭니다. 하루하루가 어찌나 휙휙 지나가는지, 아찔할 정도입니다. 서른 즈음의 세월이 두렵게 다가오네요.



용기란 것은 무엇일까? 요새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캠핑장 같은 곳에 가서 담력훈련 같은 걸 하잖아요. 어두컴컴한 산길을 걷는 유년의 필수 이벤트. 그런 추억은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련하지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니면 학창시절 좋아하는 이성에게 눈 질끈 감고 고백을 하는 것도 용기의 중요한 관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고딩(특히 중딩, 특히 남학교) 시절 학급교실은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지배하는 만큼 남자들의 '용기'와 관련된 원초적인 상징으로 남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런 상징이 번지는 배경에는 왕따문제와 노골적인 '이지메', '셔틀문화'의 범람도 꼽을 수 있겠고요. <말죽거리 잔혹사>나 <20세기 소년>, <3단합체김창남>과 같은 만화나 영화 등 대중문화는 이런 '마초적인 위계질서를 극복하는 소년 히어로'를 잘 활용하기도 하죠. 그만큼 우리 모두의 판타지가 있는 것이니깐요.



스포츠 스타들은 너 자신을 극복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것이 용기라고 말해주고(스포츠 브랜드와 미디어는 이를 부풀리고), 오프라 윈프리나 스티브 잡스 같은 걸출한 인물도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며 용기를 북돋고, 장애나 병을 극복한 여러 사람들, 자기계발 강사, 사랑을 위해선 모든 걸 버리는 통속드라마의 주인공들 또한 하나 같이 용기의 화신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이런 사람들을 활용하는 미디어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나이키의 "JUST DO IT"이라는 문구는 역대 최고의 마케팅 문구 아닐까요. ^^ 



여하튼 뭔가 용기를 낸다는 것은 타성에 이끌려, 무엇인가 외부적인 힘과 압력에 이끌려 지지부진하게 살아오던 스스로의 삶을 한번쯤은 냅다 내동댕이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내동댕이친 다음엔 뭘 할 것이냐? 그 다음엔 또 어떤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인내와 고독의 과정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 거죠. 인생이란 게 알고 보면 습관과 반복의 연속이라는 사실도 참 괴롭고 무겁게 다가옵니다. 인터넷에서 해본 MBTI 검사에선 제게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충고하더군요. 흐흐...



오늘 <추적 60분>에선 퇴직한 50대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는데, 퇴직한 50대 후반의 아저씨들이 다시금 용접이나 보일러 기술을 배우면서 "몇 년 후엔 자영업을 하는 게 꿈이다"란 말씀들을 하더군요. 아직 그렇게까지 오래 살아보지 못해 그 분들의 내면을 다 엿볼 순 없었겠지만, 그런 아버지뻘의 남자들에게서도 역시 소박한 용기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러디야드 키플링의 <만약>이란 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나네요. "네 일생을 바쳐 이룩한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허리 굽혀 낡은 연장을 들어 다시 세울 수 있다면, 아들아,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어두컴컴한 산길을 터벅터벅 걷던 유년 시절의 제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강백호가 100번 실연을 당했던 것과 그의 농구실력은 서로 떨어져있는 게 아니라는 추정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매니아의 솔로 남성분들, 고백 많이 하세요. 저도 꽤 살아보니, 여자는 여자입디다. 용기를 내서 'JUST DO IT'하는 당신이 위너입니다. 그리고, 저는 루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