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신이 아니므니다.txt
이 사진은 합성
* 상황: NBA커뮤니티에서 현재 농구KING 르브론 제임스와 역대 농구KING 마이클 조던의 비교 떡밥이 올라옴. 이런 떡밥은 자주 올라옴. 조던이 지금 리그에 오면 제임스를 씹어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소모적 논쟁이 전개됨. 1월 30일.
* 배경: 조던의 경기들을 빼놓지 않고 라이브로 보거나 선수 개인스탯 및 NBA기록에 정통한 NBA매니아들이 많음. 물론 대다수 분들은 감정싸움에 휘둘리진 않았음. 어쨌든 난 과거 기록과 수치들엔 별다른 지식이 없으므로 NBA TALK이 아닌 FREE TALK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림.
지금 엔비에이톡에서 MJ와 LJ의 비교가 치열하게 벌어져서 꼭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서도...
전부터 생각해왔던 거 한 가지. 인간은 신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근데 우린 흔히 누구는 농구의 신이라거나,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었다거나, 사람이 아니므니다, 뭐 그런 표현을 하잖아요. 그만큼 잘한다는 강조와 감탄을 위해서 말이죠. 이런 표현이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고요, 다만 좀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수 있단 느낌은 듭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야, 누가 MJ가 진짜 신이라고 생각해서 신드립을 치니? 그만큼 차원이 다르다는 거지.' 라는 말을 들을 것이고, 당연히 그런 말씀이 맞죠. 그런데 예를 들어 'MJ는 인간 중에서 농구를 가장 잘한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치면, MJ를 예찬하는 뉘앙스는 <농구를 가장 잘한다>는 곳에 강조가 놓일 수도 있고, <인간 중에서>라는 곳에 강조가 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야를 막론하고 늘 후자에 관심이 많습니다. MJ도 리오넬 메시도 모짜르트도 셰익스피어도 김태희(??)도 자기 분야에선 압도적으로 최고였잖아요. 전 그 사람들이 '최고'였다는 사실보다도, 그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란 사실이 더 끌린다는 거죠...
예컨대 MJ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우리의 감탄을 들여다보면, 결국 MJ가 얼마나 농구를 잘하고, 치열하게 연습했으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 자신을 극복했는지에 경탄하는 심경이 크겠죠. 대신 저는 MJ를 보면서도 '야, 저렇게 인간 이상으로 대단했다니' 하는 생각 이전에 '저치도 인간인데 저렇게 대단했다니' 하는 식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할 때 더 사장님이 대단해보이는 측면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재능이지만, 그도 우리와 똑같았는데.
인간은 사실 별로 다를 게 없는 존재입니다. 게으르고 싶을 땐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고, 남자라면 예쁘고 어리고 잘 빠진 여자한테 혹하고(여자도 마찬가지),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고, 기분이 좋으면 거만해질 공산이 크며, 뭐에든 지나치게 중독되기가 쉽고, 중독되면 쉽게 벗어날 수 없으며,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남에게 지더라도 기어코 합리화를 하려 하고... 등등등. 또 인간은 이성적인 듯 보여도 아주 감정적인 동물이며, 우연에 취약하고, 권력에 민감한 것도 있겠네요. 이건 MJ도 MB도 석가모니도 장발장도 이건희도 다르지 않은 공통적인 특성입니다.
전 MJ가 찍은 압도적인 스탯과 비교우위에 대해선 엔비에이톡의 많은 분들 만큼 정통하진 못하지만, MJ가 그의 화려한 커리어를 걸쳐 저런 다양한 면모들을 내내 보여주었던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코트 위에서는 정말이지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필 잭슨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언제나 잔인한 상어 같은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그런 건 물론 너무도 존경스러운 면모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분야에서 '비인간적인' 재능과 실력을 보여준 수많은 천재와 스타들은 또 다른 측면에선 '평균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흔한 드립처럼, 신은 공평하니깐요! 그리고 인간은 신이 아니니깐 말이죠.
이것은 MJ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적어도 그와 같은 특출한 사람을 보는 관점을 좀 달리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수많은 우연과 변수들에 휘둘릴 수 있는 인간인데, 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거죠. MBC스페셜에 나왔던 김웅용씨가 대단한 천재라고 해서, 그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에 어느 사회에 뚝 떨어진다고 무슨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남기리라고 확신할 순 없는 거죠. (또는, 남길 수도 있는 거죠.)
농구계의 MJ만큼은 아니겠지만, 등산계에는 라인홀트 메스너란 대스타가 있는데, 히말라야의 14좌 최초 등정, 에베레스트 최초 무산소 등정 등이 대표적인 이력이군요. 젊은 시절 산에 오르다가 동생도 사고사로 잃고, 동상 때문에 발가락도 몇 개나 잃고 그랬죠. 근데 그 사람이 책에서 하는 말이, "산을 오를 때 내가 두렵지 않다고 생각하니? 웃기지 마. 산에 오를 때면 진짜 외롭고 무서워. 매번 똑같아." 뭐 이런 겁니다. 자기도 인간이라는 것이고, 일단 '인간'이라는 전제 하에 자신의 승리와 극복의 결과를 봐달라는 거죠. 압도적인 천재나 스타를 너무도 쉽게 신격화하거나 이질화, 대상화, 자신도 모르게 꽝꽝 '박제'하고 자신도 모르게 숭배하는 대중들의 심리를 쿡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이 길어져버렸네요. 어느덧 시간이 여차여차 되었는데 다들 오늘 하루도 마무리 잘 하세욧!
* 반응 요약
1. 에이~ 설마 누가 진짜 신이라고 생각하고 숭배할까봐요.ㅋㅋ
2. 어디선거 봤는데, 용기있는 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도 헤쳐나가는 것이라고.
3. 역시 OOO님은 글을 너무 잘쓰셔.ㅎㅎ
4.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실제로 MJ를 숭배하는 종교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