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아주 조금씩
굉장히 비참하고 쓰디쓴 밤이었다. 나는 여전히 남을 올라타고 갉아먹을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씩은 장애인이며, 정신의 장애와 한계를 가진 이에게 악을 써도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불타는 집에서 동생을 구하다가 스러진 그 누나의 깊고 성숙한 영정의 얼굴을 기억한다. 난 운명적으로 걸머져나갈 모든 인연의 멍에들이 두렵다. 고쳐지지 않거나 희망이 없는 불구는 끔찍하다. 불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란 한탄은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속 편한 정리는 엉성하고 형편없는 자기위안에 불과한 측면도 클 것이다. 비유컨대 손가락 하나 없는 사람과 전신이 뒤틀린 이를 동일선상에 놓는 게 옳은 일인가.
그러므로 나는 둔감한 인간을 도저히 사랑하지 못하겠다. 탁한 동공의 눈과 굳어버린 귀, 철판 같은 영혼의 칭얼거림, 타인을 차분하게 관조하지 못하는 유아적 습성을 더는 참지 못하겠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말과 행동, 표정을 반복하는 모든 질기고 딱딱한 가면들을 말이다.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지르고, 배고플 때 배고프다고 자지러지는 일은 천박하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씩은 천박하고, 자신의 핏줄과 성장의 찌그러짐과 구겨짐을 숨기지 못한다. 아마 누군가에겐 선천적으로 약한 육체와 신경 탓도 있으리라. 동정심은 가끔씩 끔찍하다.
그리고 내게도 혐오감을 이렇듯 추상화시키는 일은 불가피하다. 내가 이 추상성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벗어던질 수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내 몸에 맞는 자유를 움켜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을 바꾸려는 시도는 얼척없다. 난 오직 내 할 말을 저음(低音)으로 말한 뒤, 내가 사랑할 순 없는 그를 나에게서 멀리 떼어놓으면 되는 것이다. 조금씩, 매일 아주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