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메리카: 어느 젊은 극작가가 이룬 것
2013년 초연 이후 굉장한 찬사를 받았던 <차이메리카>. 두산아트센터에서 올린 작품을 보고 왔다. 미국과 중국을 넘나드는 희곡이 워낙 탄탄해서 2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세계를 주름잡는 G2, '차이메리카'의 역사와 현실을 객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적인 감성에, 보편적 민주주의와 인류애가 가진 호소력을 단순하면서도 빼어나게 섞고 배합했던, 진정 영국적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작가 루시 커크우드(Lucy Kirkwood). 나와 동갑이다. (1984년생) 솔직히 좀 더 나이가 많은 극작가일 줄 알았는데, 놀랐다. 충격도 받고, 자극도 되었다. 가디언을 비롯한 여러 영국 매체들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정치와 섹스, 그리고 여성에 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성적으로 파격적인 작품을 써놓고선 자신의 부모가 보게 될 것을 걱정하는 (귀여운) 고민이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꽤나 워커홀릭인 듯했고, 수녀처럼 사는 건 아니냐고 그녀에게 기자가 묻자, 자신은 술도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책상의 랩탑 앞에 홀로 앉아 와인을 홀짝이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답하기도 했다.
포스터만 놓고 영국과 우리의 연극계를 비교하는 것은 옳지 못할수도 있으나, 저 풍성하고 세련된 영국의 <차이메리카> 포스터들은 새삼 자신만만해 보이고, 멋져 보이며, 상대적으로 우리의 부박한 연극의 풍토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 같다. 대단히 영리한 원작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해외 작품의 연출을 따라하는 데 급급한 듯했던 설익은 연출적 장치들과 함께, 배우들의 대사들도 영 이물감이 느껴지는 등 번안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쉬웠다. '뭐, 대부분의 요새 연극들이 다 그렇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던 게 더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완전히 대중들에게 전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삼류 예술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