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자기소개서를 읽으며
오늘 저녁 노무법인에서 노무사로 일하다가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친구의 자소서를 첨삭해주었다. 회사 일도 밀려있었지만, 대학 때 워낙 친하기도 했고, 그간 준비도 열심히 했던 친구여서 선뜻 봐주겠다고 말했다.
읽으면서는 깜짝 놀랐다. 친구가 굉장히 잘 써서 말이다. 글솜씨도 좋았고, 그동안 나 모르게 쌓아왔던 유관 경험들도 무척 많았고…. 이렇게 저렇게 빨간 글씨로 수정하긴 했지만, 기본 골격은 크게 고칠 게 없었고, 좀 더 포장하거나 보완하는 정도였다.
어쨌거나 자소서를 보는 내 마음은 흐뭇하면서도 착잡했다. '언젠가는' 정도로 느슨하지만 분명하게 로스쿨을 생각하면서 대학에도 들어왔고, 어린 시절 오랫동안 나도 법으로 밥 먹고 사는 일을 꿈꿨었는데…. 인권과 기본권, 자유와 평등, 정의와 공익 등과 같은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말이다. 그랬었다.
전혀 다른 길을 생각했던 친구는 지금 로스쿨에 가려는 자소서를 쓰고, 나는 또 멀다면 꽤 먼 길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했다. 친구 자소서에 '조영래'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빨리 끝내고 주말에 해야 하는 일을 더 신경썼겠지만. (ㅎㅎ) 그 이름에 마음이 동해서 1시간이 넘게 달라붙다.
내가 20대에 스스로에 대하여 똑바로 직시한 사실 한 가지는, 스스로 생각하던 것보다, 나 자신 공부에 관해서는 진득한 끈기가 매우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매일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무엇 하나를 그 핵심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로 오래도록 매달리는 게 어울리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힘들어도 어찌할 수 없다. 억울해할 것도 없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나이고, 또 내가 걸어갈 길이 나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로스쿨이든 뭐든, 내 앞길에 단단한 자기확신이 깃들기를 바랄 수밖에 없겠다. 많이도 읽었던 글 한 꼭지를 타이핑하면서 오늘을 마무리한다. 조영래 변호사가 큰아들에게. (1990. 1. 18.)
일평이에게.
앞의 사진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이 건물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아빠는 네가 이 건물처럼 높아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되거나 제일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다.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느끼고 또 남에게도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높은 소망인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