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DJ의 야밤선곡

하덕규 - 자유

Alyosha 2011. 9. 9. 02:00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다른 것 다 버려도 끝내 포기하지 못할 단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일 것이다.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인간은 구속된 존재다. 그 구속의 올가미는 질기고, 촘촘하며, 숙명적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그것은 사실의 영역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인데, 그 당위는 고귀하다. 고귀한 만큼 아무나 얻을 수 없는 것이 자유다. 어젯밤 이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그 고귀함에 대한 울림이 있었다. 


오늘 하덕규를 검색해보니,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고, 아마 이 노래 또한 그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표현하는 노래인 듯싶었다. 시인과촌장 시절의 유명한 '가시나무' 역시 기독교의 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오래 전 시인과촌장 앨범을 갖고 있으면서 좋아하던 시절에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덕규에게 '그'란 예수와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기독교도가 아닌 나에게는 '그'가 달리 들린다. 나는 '그'가 바로 이 글을 읽으며 나와 일상에서 부대끼는 당신이기를 바란다.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올가미를 덧씌우는 '그저 그런 만남'에 만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과 나는, 서로 안의 '애타게 찾던 것'을 찾아주도록 격려하고, 서로의 '껍질'을 벗겨나가는 일을 진실로 기원하는 관계라면 좋겠다.


'그'는 바로 당신이다. 이것이 신을 믿지 않는 자의 자유의 가능성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어떤 분위기 속에 유년시절을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일화가 하나 있다. 그가 어렸을 적, 그의 아버지는 9살짜리 어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인들에게 교수형을 당한 기독교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하며 이렇게 말했다.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 누가 이 사람들을 죽였나요?”

아버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유.”

(그리스인 조르바 中, 이윤기의 후기)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껍질 속에서 살고 있었네 내 어린 영혼
껍질이 난지 내가 껍질인지도 모르고
껍질 속에서 울고 있었네 내 슬픈 영혼
눈물이 난지 내가 눈물인지도 모르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껍질 속에서 노래 불렀네 내 외로운 영혼
슬픔이 난지 내가 슬픔인지도 모르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애타게 찾던 게 뭔지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목마르게 찾았던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