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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육도(死生六道) 미진즉(迷眞則) 사의순환(似蟻巡還) 팔난삼도(八難三途) 자정즉(姿情則) 여잠처견(女蠶處繭) 상차생사(傷嗟生死) 종고지금(從古至今) 미오심원(未悟心願) 나능면의(那能免矣).
생본무생(生本無生) 멸본무멸(滅本無滅) 생멸본허(生滅本虛) 실상상주(實相常住) 환회득(還會得) 무생멸저(無生滅底) 일구마(一句麽)….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지난 수요일 새벽. 너의 죽음을 들었다. 큰아버지에게서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내게 말씀해주었다. 충격을 받았다. 너를 알던 지인이라면 누군들 그러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 나도 널 잘 알지 못했다. 이제 김해는 내게도 아픈 땅이 되어버렸구나. 어둡고 쓰린 땅이.
매해 두 번씩은 꼭 찾는 우리의 아버지들의 고향. 그곳에서 난 너를 매해 두 번씩은 꼭 보았다. 나보다 한 살이 어렸지만 넌 나의 조카였고, 난 너의 삼촌이었다. 서울로 돈 벌러나온 아버지의 자식이었던 난 서울토박이로 자랐다. 넌 지금은 돌아간 첫째 큰아버지의 맏손주였다. 너의 집안은 김해를 지켰고, 언제나 한 해에 두 번씩 타향살이하는 식솔들을 불러모았다.
너는 키는 작았지만 몸은 강골이었고 뼛마디가 두꺼웠다. 둥그런 얼굴에 인상이 선했고, 얼굴 윤곽이 얼마간은 나와도 닮아있었으리라. 너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행동은 굼뜬 편에 가까웠다. 너는 놀랍도록 순했고, 어떤 면에선 옛스러웠다. 너에게선 도회의 가쁜 계산과 분주함, 현대인들의 잘 숨겨진 확장의 욕망 같은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너의 투박한 느낌 속에는 과거의 은은한 냄새가 섞여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널 오로지 제사 때에만 만났던 탓도 있으리라.
난 너를 좋아했다. 널 더 알고 싶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명절 때 단 둘이 함께 피시방에 몇 번 갔다. 너는 축구게임을 좋아했다.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나눴다. 너는 대학생활과 취업 등에 대한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내가 "독하게 맘 먹고 한 번 해보자"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그러나 너와 나는, 사실 그다지 친하진 않았다. 명절 때는 둘 다 각자 심심해하는 편에 가까웠다. 서로의 전화번호와 홈페이지 주소를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연락을 나눴던 적은 거의 없다. 난 네게 "내가 돈 벌면 김해 내려올 테니 삼겹살에 소주나 먹자"고 여러 차례 말했었다. 꼭 그러고 싶었다. 그것은 기약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지난 설날, 김해엔 오랜만에 형님들이 모였다. 이젠 마흔을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어렸을 땐 또래가 엇비슷한 이 형들이 우리들을 끌고 다니며 명절 분위기를 내곤 했다. 형들은 조금이나마 옛날 분위기를 내기 위해 당구장 갈 사람을 모았다. 너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고, 가지 않았다. 그때 네 표정에는 전연 별다른 점이 없었다.
서울에 들러붙어 이름있는 대학을 다닌다는 건 이 사회의 허울좋은, 그러나 엄연한 힘이다. 형수님은 언젠가 "도련님 나중에 성공해서 쟤 좀 잘 끌어주세요"라고 말하면서, 남몰래 용돈을 쥐어준 적이 있다. 그야말로 일개미처럼 일과 친한 맏며느리, 제사 때만 되면 어깨가 벽돌처럼 딱딱해지던, 촌스러운 형수님이다. 난 다른 친지들 눈치가 보이면서도, 늘 설거지를 좀 더 도와드리거나 안마를 해드리려 애썼다. 이 형수님은 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형님은 어떠할까. 형님 집안은 늘 경제적으로 휘청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소식이 너의 죽음과 함께 들려온다.
너의 소식을 들은 이틀 뒤, 난 김해에 내려가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난 삼일장을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형님은 이미 너의 죽음 다음날 근처의 한 절에서 너의 초상이 끝났다고 전해주었다. 미안하다. 죽음을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 얼마 전까지 재가자로서 절밥을 먹으며 일할 땐, 천도재와 같은 의식들, 정형화된 염불, 노파들의 간절한 기도에 거의 절실함을 느끼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 순간에 그 죽음의 애도가 내게도 간절해졌구나. 그 한 순간은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태어남과 죽음이 본래 없는데, 오로지 네 영혼이 참되고 참된 곳에서 편히 쉬게 되길 바랄 뿐이다.
너의 죽음을 듣고도 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웃고, 떠들고, 사람들을 만났고, 미혹한 감정들에 취해 일주일을 보냈다. 너를 진정 애도한다는 것은 너의 생전 마음자리를 보고, 내가 눈을 떠서 나의 마음자리를 밝히고 닦는 일과 다름이 없으리라. 그래서 또 다른 너,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맑은 기운을 나눠워야 하리라. 내가 너에겐 미처 해주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너와 나, 이 세상의 누구도 고립되거나 분리된 존재가 아니므로. 너는 나이므로.
이 글은 시작하는 일도, 쓰는 일도 힘들었다. 널 죽음으로 몰고 간 마음의 어둠을 극복하는 일은 산 자들의 몫이고, 나의 몫이다. 너는 오직 평온하라. 미안하다. 너를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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