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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몇 살에 '첫경험'을 했는가? 장소는? 상대 이름은?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는가? 초면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연극 <마이 퍼스트 타임>은 너무 은밀해서 꽁꽁 감춰두었던 첫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풀어놓게 하는 '묘한' 공연이다.
시작 전부터 객석에 울려 퍼지는 마돈나의 '라이크 어 버진'이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섹시 백' 같은 팝송은 연극이 어떤 내용일 것이란 걸 미리 짐작하게 만든다.
'섹시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덧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관객은 첫경험에 대한 11개의 질문이 적힌 파란색 설문지를 받는다. 솔직하거나 무덤덤한 혹은 톡톡 튀는 관객들의 다양한 경험담은 연극이 무르익을 무렵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관객 자신의 이야기가 언제 공개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도 이 연극이 지닌 짜릿함 중 하나다.
"첫경험 장소는?"이란 질문에 관객이 적은 답변은 '청량리 588', '모텔 **', '놀이터', '내 방' 등 의외로 제각각이고 다양하다. "첫경험 상대는?"이란 질문에도 '아는 누나', '과학 선생님', '원빈', '신랑', '이름 모름' 등 다소 엉뚱한 대답이 쏟아져 나와 시종일관 배꼽을 잡게 만든다. '내 이야기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거 부끄러워!' 이런 생각을 한다면 걱정 마시라! 관객은 익명의 자유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사다리 의자에 앉은 배우 4명은 자신들의 경험인 듯, 또한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비밀스런 이야기인 듯, 관객에게 은밀하게 첫경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기한 건, 두 시간 내내 성과 섹스 이야기를 해도 야하거나 불쾌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사적인 이야기도 내용 중에 섞여 있기 때문에 유추하는 재미는 덤이다. 배우들은 첫경험 상대 이름까지 공개하는 대범함을 보인다. 배우와 관객이 서로의 경험담을 털어놓았기에 소극장은 이미 끈끈한 유대관계로 이뤄진 셈이다. '첫경험'이란 단어가 지닌 떨리고, 설레고, 사랑스럽고, 한편으론 가슴 아프고 허탈한 이야기는 결국 관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죽을 병에 걸린 동생을 위해 순결을 내어준 친누나의 이야기나 성불구인 애인과의 첫경험 이야기는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외국인, 동성과의 첫경험 이야기에서는 관객의 눈이 반짝 빛난다. 또한 칠순이 넘은 노인이나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첫경험 이야기는 <마이 퍼스트 타임>이 성과 섹스를 소재로 하지만 결국 우리네 인생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싶어,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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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소품과 심플한 무대 연출. 좌담회 분위기로 갈 것. 배우들은 모노 연극(독백극)을 하듯, 설문조사와 자막으로 관객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끌어낼 것. 국내 최초의 스탠딩 코미디류의 연극을 만들 것.' 당시 그가 떠올린 영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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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의 원작자이자 연출가는 국내에서 뮤지컬 <알타보이즈>로 소개된 켄다벤포트(이하 켄)란 젊은 연출가죠. 오프브로드웨이에서 2년 동안 매진이란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의 작품을 제가 맡았는데 그에 대한 부담이 컸어요. 뉴욕에서 직접 연극을 보고 켄을 만났어요. 그와 많은 대화를 했죠. <마이 퍼스트 타임>에서 당신은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냐고 제가 물었어요."
켄의 대답은 바로 '리얼'이었다. 배우들이 실제 자신의 경험담을 관객에게 이야기하듯 '리얼'하게 해줄 것을 그는 강조했던 셈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설득력 있고 맛깔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배우 캐스팅이 관건이었다. 퍼포먼스도 없었고, 배우의 대사가 전부였다. 돌발적인 상황극을 즐길 줄 아는 배우라면 합격이었다. 연기를 너무 잘해도 탈이었다. 너무 극적으로 보일지 몰라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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