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 초대받아서 갔다. 재단에 인연이 있던 박인서 선생님 출연.
송승환의 연기는 맥이 빠졌다(비유컨대, '영혼의 무게'가 줄줄 새어나간 느낌이었다). 류덕환은 재능이 있어 보였다. 1부가 조금 길었고, 인터미션 후 1부에 비해 짧았던 2부까지 두 시간이 훨씬 넘었던 작품이었다. 1부는 꽤 재미있게 보았으나, 2부에서는 대단히 실망했다.
섬세하고 진중하게 작품의 맥을 살리지 못한 연출(조재현)의 탓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다이사트와 알렌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머지 캐릭터들이 지녀야 할 서사적 고조의 맥락들, 다시 말해 다이스트와 알렌의 갈등을 폭발적으로 극대화시켜야 할 주변적 맥락들이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보다도 연출의 감각적 둔감함의 문제였지 싶다.
카타르시스 직전, 알렌과 질이 나체가 되었던 성적 은유의 장면도 내겐 그야말로 전혀 불필요하게 느껴져버렸다. 한 마디로, 조재현의 EQUUS는 아홉 마리 말들의 탄탄한 근육질의 몸, 에 불과한 연극이었다. 보기엔 나쁘지 않으나 그것뿐이고 속이 텅 비어있다. (말들을 그렇게 벗겨놓은 것도 연출적으로는 상당히 무식한 짓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반적인 무대 구상은…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무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다가 자신의 역할 때에 조명 안으로 들어가고, 무대 가운데의 회전 가능한 사각형 구조물과, 그 주변이 여러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뒤편의 커다란 벽도 열리고 닫히면서, 주로 알렌의 환상 장면에서 말들의 등장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런데… 스테이지의 전반적인 갈색 톤의 색깔은 작품과 잘 어울렸던 걸까? 연기하고 있지 않은 배우들을, 그렇게 다소곳하게 무대 중앙을 향해 앉힌 것은 잘 한 일일까?
희곡에 대해: 결국 작가의 고민이 드러난 2부를 보면서, 이 희곡에 대해 평론가들이 했다던 비판… "더할나위없이 진부하고 도식적인" 작품이라던 비판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했다. 쉐퍼는 희곡에 대해 인간 내면의 디오니소스적 욕망("Dionysian")과 아폴론적 욕망("Apollonian")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했단다.
1973년 작품으로, 같은 해 영국에서 첫 상연. 75년 토니 작품상과 연출상 수상. 대중에게는 당대에 상당히 어필했고, 또 그만큼 도식적이지만 연극적으로는 안성맞춤인 흥행적 요소를 갖췄다고도 볼 수 있으나, 아무래도 우리나라 연극사에서 수십 년 전부터 "재탕 삼탕 막탕"되며, 2010년의 한국에서도 이렇게 '위대한 연극' '명품연극' 운운하고 요란하게 선전되는 걸 보면… 조금은 씁쓸하다.
* 해리 포터의 주인공인 Daniel Radcliffe도 에쿠스의 알렌 역으로 분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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