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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Forever Tango'를 감상했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댄스 뮤지컬"이라는 문구를 달고 광고 중이었다. R석이라는 친구의 꾀임에 표를 덥썩 양도받았으나, 2층 S석이어서 아쉬웠다. 의상과 배우들의 세세한 표정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런 탓도 있겠지만, 춤보다는, 스테이지 뒤편에서 탱고 선율을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더욱 감탄스러웠다. 9명의 중년 남성들이 4대의 반도네온, 피아노,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했다. 폭이 크게 변주되는 감정적이고 이국적인 멜로디와 연주가 대극장을 채웠다. 아코디언인지 알았던 '반도네온'은, 1846년 독일의 Heinrich Band가 기존 아코디언과 콘서티나를 개량해 만든 악기이고, 19세기 후반 독일선원과 아르헨티나 독일 이주민들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애수를 띤 어두운 음색과 짧은 스타카토가 특징이라고. 피아노 주자의 즉흥연주 중 '고향의 봄'이 슬쩍 들어갔을 땐 관객들 입에서 즐거운 탄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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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아름다웠고, 공연팀의 내공도 거의 완벽했다고 느껴졌다. 다만 공연의 많은 씬들에서 탱고가 단지 '기예'로 느껴지는 몇 순간들이 있어 조금 졸려왔다. (마치 발레의 정형화된 기술들을 보는 듯 말이다) 좀 더 연출적인 변화와 시도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서사적인 진행구조가 너무 없었던 것도 흠이라면 흠으로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무용감독과 연출자의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원활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두 씬은 나를 흥분시켰다. 공연 절정부, 남녀가 완전히 조화를 이룬 상태로 보여준, 크고 역동적이며 아크로바틱한 움직임들은 정말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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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남성적인 춤이지만, 탱고의 남성성은 여성이 이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주도하지만, 여자가 완성시키는 춤…. 남자 무용수의 절도 있는 동작에 맞추고, 이끌리고, 들어올려질 때, 여성 무용수는 그 동작들을 '즐기고' 있다는 걸 관능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탱고의 독특한 색채가 드러나는 건 아닐까. 평균 4~5분의 탱고 음악에 맞추어 추게 되는 탱고의 가장 큰 특징은 두 파트너 간의 밀착과 터치가 쉼 없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Tango는 "만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어원인 'Tangure'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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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얼마나 '우월한' 매체인지도 생각했다. 영화는 잡식성의 괴물 같다. 달콤한 스토리텔링과 순수예술이 만나는 지점에 '대중적인' 영화가 버티고 있다. 밍숭하게 느껴지는 씬들이 나열될 때, 나는 <물랑루즈>의 군무(群舞)와, <해피투게더>의 장국영-양조위와, <여인의향기>의 눈 먼 알 파치노가 그리웠다.
대극장답게 상당히 많은 조명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듯했고, 각 씬마다 조명 색과 크기, 모양은 다양하게 바뀌었다. 붉은색과 파란색, 푸른색, 보라색, 희끄름한색, 옅은 갈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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