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쯤 아침 출근길 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DJ가 어느 해외 교수를 인용하면서 이 단어를 말해주었다. 한국어로 '질질 끌다'는 표현을 쓰면서 말이다.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뻔하게 되풀이하는 자기계발의 한구절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순간 뇌리가 뜨억하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직감이 들었다. 내가 망할 꺼라면, 아니 망하고 있다면, 뭐 다른 거창한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바로 이 질질 끄는 습관 때문이라고.
미루는 버릇 없는 사람 없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게으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보편성은 내게 별다른 위안을 주지 못한다. 나도 이제 서른줄 정도를 살며 꽤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고, 그중 여러 사람들과는 이런저런 깊은 관계를 맺어보기도 했다. 그런 이들 중 몇몇은 나와 체질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은 일단 해야 할 것은 어떻게든 탁탁 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었다. 뭐 억지로 그러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체질 자체가 말이다.
오히려 조금 성글고 거칠게라도, 일단 하는 사람들. 지나친 완벽주의도 분명히 게으름의 결과라는 사실을, 지나친 완벽주의적 성정 탓에 뭣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는 내게 똑똑히 알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그러면서 '아놔 나 너무 게을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절대로 게으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흠모했고, 존경했으며, 또한 질투했다. 있는 힘껏, 그러나 남 몰래, 즉, 찌질하게.
이걸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어려운 문제다. 내가 새벽까지 일을 한답시고 이 궁벽한 회사에 남아서 이 밤을 새고 있는 것도 뭐 결과론적으로는 다 질질 끌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말하면 질질 끄는 나의 습관 때문에 내가 망한 게 아니다. 그냥 내가 나를 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질질 끄는 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그토록 지독히 게으른 일면을 갖고 있다는 거다.
저 중학생 시절부터 얼마나 오랫동안 쌓여온 벼락치기 인생인 거냐. 그때 그 시절부터... 뭣도 아니었던 자신감과 무시무시했던 나태함이, 이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라는 거대한 중력과 만나서 나를 붙들어매고 있다.
스스로를 극복하는 '마음의 힘'이라는 것, 집중력이라는 것, 목표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 그건 분명히 있다. 동시에 자기파괴를 향한 무의식적 욕망, 나태한 습관의 힘도 그만큼 세다. 그 사이에서 좀 더 영민하고, 구체적이고,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거창하지 않고, 세심하게. 잘게잘게 나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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