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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SLUMBER

노래하듯이 햄릿 @극단 홈페이지





저는 아직까지 커튼콜 시간에 '기립박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건 감명받은 공연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저를 포함한 관객들 모두 앉은 상태에서 박수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외국 스포츠경기를 보면 관객들은 앞·뒤·옆 관객들 눈치볼 것 없이 흥이 나면 벌떡벌떡 잘 일어나서 박수치고 응원하던데, 2시간 가까이 고생한 배우들을 앞에 두고도 끝까지 제자리에 앉아서 박수만 치고 끝내는 우리 소극장의 풍토는 아무래도 너무 야박한 것 같습니다. 저도 소심해서 혼자만 벌떡 일어나진 못했는데….



어제 <노래하듯이 햄릿>을 보면서는, 다른 여느 공연보다도 더 기립박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포쓰와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며, 그들의 연기가 대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아니나 다를까, 공연 후 읽어본 팜플렛에는 수 년간에 걸친 공연준비와 훈련의 과정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네 분 광대들의 열연에 찬사를 보냅니다. 배우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커튼콜 때에 이런 마음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맥없이 박수만 쳐서 사실 좀 미안했어요.ㅋㅋ 같이 간 친구 한 명만 있었어도 둘이서 일어나 열렬히 경탄을 표했을 텐데 말이죠.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무대와 음악과 조명과 각종 대도구 소도구, 소품들 모두 한 편의 극에 잘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햄릿>+인형극+음악극+광대극이라는 신선한 발상, 참으로 뛰어난 가면들과, 천을 이용한 기가 막힌 미장센들과, 인물의 지위·심리상태를 예리하게 포착한 소품들의 이용과, 무대와 사륜마차를 종횡무진 긴장감 있게 활용한 네 광대들의 움직임·동선과, 극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음악, 그 음악에 잘 어우러진 배우들의 노래까지…. 정말이지 '정성'이 듬뿍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느껴졌고, 그런 면에서 참 감동적이었어요. 그 정성이라는 게 돈이나 물질적인 걸 많이 투자했다는 게 아니고, 한 편의 공연 속에 여러 분야, 여러 사람들의 열의와 에너지가 고도로 집중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죠.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정성이 퐉퐉 느껴지는 작품이다보니깐, 한 사람의 fan心으로서, 행여나 이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거나 사람들이 그 가치를 폄하할까봐, 그런 아쉬운 점들이 더 크고 민감하게 느껴지는 듯하기도 합니다. 이런 말할 안목도 못되지만, 만약 이번 정미소에서의 공연이 마지막이 아니라면, 다음 공연에서는 이런저런 게 바뀐다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작품의 연출님도 '굿' 얘기를 하셨는데, 이 작품의 모티프나 '광대(무덤지기)'라는 인물들도 그런 면에서 <햄릿>과 관객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극속에 파묻히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새로운 의미를 얻는 거죠.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광대와 관객간의 소통의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았나 생각돼요. 제가 작품 도입부까지만 해도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는데,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농도 걸고 하는 부분이요. 그런데 거기까지가 끝이고 이후로는 그러한 상호 소통·교감이 거의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광대들이 감정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햄릿>이라는 서사구조에 매달리니 관객들도 따라서 <햄릿>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는데, 이러니깐 다 아는 햄릿 이야기의 재탕 느낌도 들고, 이 연극만이 줄 수 있는 느낌 혹은 '파워'가 약간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광대들이 <햄릿> 스토리에만 집중하지는 않았고, 극 중간중간에 제 위치로 돌아와서 광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는데, 그 장면들에서 어떤 깊이감이나 햄릿을 둘러싼 혹은 햄릿을 뛰어넘는 성찰성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광대(무덤지기)들의 캐릭터가 좀더 깊이 천착된다면 관객들에게 더 큰 호소력을 전해주지 않을까 생각돼요. 그런데 저는 그와 함께, 광대들이 <햄릿>에서 빠져나와 무덤지기로 돌아가는 장면들에선 정말이지 굿과 같은 총체적인 한 판 놀이판의 느낌을 좀더 살리면 좋겠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연극만이 줄 수 있는 고유성과 힘을 살리는 쪽으로요…. 



작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대단하긴 한데 어쩌면 조금 '영화적'인 성격이 강한 게 아닌가 하고요. 긴 시간에 걸친 준비와 훈련, 정성, 그리고 실력으로 한 편의 근사한 '작품'이 나오긴 했는데, 관객들이 마치 영화 스크린관을 바라보듯 공연장에서 그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완성도도 대단한 것이겠지만, 적어도 <햄릿>을 보면서 비웃고 비틀고 연민하고 되새기는 무덤지기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는 작품의 구성이나, "햄릿이라는 이야기가 내게는 그다지 진지하거나 비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연출님의 말씀을 두고 보면, 이 작품의 무게비중이 지나치게 <햄릿>의 서사와 감정에 쏠려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작품 마지막 부분과 결말도 퍽 아쉬웠구요.



이렇듯 일말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노래하듯이 햄릿>은 그것을 압도할 만큼 대단한 완성도와 힘을 가진 작품이라고 느껴졌고, 그래서 보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 작품을 만든 모든 분들 수고하셨고 좋은 공연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대할께요.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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