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네스코의 희곡 세 편 <대머리 여가수>, <수업>, <의자>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다.
이번에 읽은 이오네스코의 초기 희곡들에서는 별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첫번째 작품 <대머리 여가수>는, 무식한 독자 탓인지는 몰라도 '언어유희' 정도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옮긴이 오세곤 교수는 이오네스코의 작품을 부조리극의 전형으로 추켜세우며, 부조리극에 대해 "인간들의 막연하고 근거 없는 집단적 믿음(조리) 앞에 그들이 믿으려 하지 않는 적나라한 현실(부조리)을 제시하는 것"이자, "인간 논리의 근간인 언어 자체의 비논리성을 부각"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게 이번 작품집(특히 <의자들>을 제외한 앞의 두 작품)은 희곡이 갖는 탄탄한 서사성이 상실되고 언어학적 · 논리적인 영역에 갇혀 지리하게 맴도는 느낌을 주었다. 인간의 '의사소통'의 본질적 한계에 대해 다루겠다는 것인데, 상당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이러한 문제의식에 아직은 공감하지 못하겠다. 오세곤 교수가 말하고 있듯,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그려낸 까뮈와 같은 문학이 더 '인간적'이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무엇일까? 인류의 보편 정서에 호소하고 있다,는 말과 통할까. 이오네스코 자신이 "내 눈에 우스꽝스러운 것은 특정한 사회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 전체의 우스꽝스러움을 말하는 것, 동구권의 전체주의든 서구의 자본주의든 원시적인 부족사회든간에 공통적으로 인류에게 내재하고 있는 '한계'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효한 일일 것인가.
가장 많이 '열려있다'고 자부하는 예술의 양식이 실은 가장 폐쇄적이고 소아적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부조리극은 유럽, 특히 프랑스의 문학과 문화가 지닌다는 엘리트주의적인 성격과 통할는지?
인류 공통의 한계라 하니, 레비-스트로스가 생각난다. 그의 책도 읽어야 할 것이다.
<대머리 여가수>와 <수업>에 비해 <의자들>은 좀더 뚜렷하게 작가의 주제의식을 전달하며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완성도가 높게 느껴졌다. 일견 앞의 두 희곡이 등장 인물들간의 언어적 대립이라는 폐쇄구도인 데 반하여 <의자들>은 '의자'가 상징하는 상대적 · 개방적 구도로 그려진 데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지. 예전에 <왕은 죽어가다>를 읽고 느꼈던 어렴풋한 감동을 <의자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오네스코의 출세작이라는 <코뿔소>를 읽어야겠다.
이제 이오네스코와는 정반대로 정통 리얼리즘이며 서사적인 이야기구조, 미국적 · 대중적 성격을 갖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관해 적어볼까.
3장: 포커치는 밤. 원색적이고 야하고 선정적인, 그리고 조야하고 직선적인 원색. (의상, 무대, 소품)
7장: 스탠리와 스텔라가 블랑시에게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블랑시가 욕실 안에서 샤워하며 희망과 애정으로 가득한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극적 대비.
8장과 9장: '망쳐진 행사'라는 모티프
9장: 미치를 향한 블랑시의 절망적이고 시적인 고백. "마음속으로는 거짓말한 적 없어요" 멕시코여인의 목소리. "플로레스…(꽃이요, 꽃. 죽은 사람을 위한 꽃이요. 죽은 사람을 위한 왕관이요, 왕관)"
장 전환 때마다 분위기에 맞게 변주되어 반복되는 음악. 폴카, 흑인풍의 <블루 피아노>.
테네시 윌리엄스 자신이 "나는 블랑시 두보아다"라고 말했다지만, 아버지는 시끌벅적하고 호탕한 성격에 어머니는 히스테리 직전의 예민한 사람이었다는 윌리엄스의 가족사는 내게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블랑시 두보아의 몰락을 산업사회의 진입 후, 미국에 잔존한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상의 몰락으로 볼 수도 있다고.
블랑시: "전혀 강하거나 자립적이지 못했어. 사람이 여리면, 여린 사람들은 희미한 빛을 발하거나 반짝거려야만 해. 나비 날개는 부드러운 색을 띄어야만 하고 불빛 위에 종이갓을 씌워야만 해… 여린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거든. 여리면서도 매력적이어야 해. 그리고 나는, 나는 이제 시들어 가고 있어! 얼마나 더 눈속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5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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