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정기공연 중에 한양대 서울캠퍼스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이었다. 1학년 남학생이 댓글도 달고 실제로 찾아오기도 했다던데,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양극예술연구회 "들꽃"에 소속한 04학번 박아무개라고 합니다. 이번 제69회 정기공연 <똥과 글의 만남>에서 `무대`를 맡은 스태프입니다.

이젠 진부한 말이지만 대학생으로 살기 참으로 퍽퍽한 세상입니다. 사정을 깊이 알진 못해도, 우리네 사정으로 미루어보건대 우리 대학 대부분의 동아리들 역시 아주 몸을 배배 꼬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유`가 야금야금 사라져버리고 있는 세상, 실제로는 정확히 몰라도 아무튼 취업이 그렇게도 힘들다고 메아리치는 세상, 그럼에도 한양 앞에 붙는 "애국"이라는 빛바랜 수식어가, 혹은 "민중"과 "투쟁"과 "혁명" 등등의 단어들이 20년 전 앨범처럼 남아있는 과도기.

멋과 여유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누구든 쫓기듯이 대학생활을 하고 싶지만은 않지요. 꼴에 이것저것 다 잡아먹는 연극을 한다고, 튀고 싶거나 아님 믿는 구석이 있다든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얼간이들이라든가, 끼가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처럼 넘친다든가 하는 건 안타깝게도 저희와는 전연 들어맞지 않습니다.

저희 공연은 개강날에 시작했는데, 첫 공연이 시작하기 3시간 전쯤, 그러니깐 리허설 직전에 이번 공연에서 배우를 맡은 1학년 여학생이 토익강좌 전단지를 심각한 눈으로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저는 서글퍼졌습니다. 이건 뭐 거의 발버둥의 수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대학문화`라는 게 있다면, 그건 입으로 떠들어서 지켜지거나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톨스토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지휘관의 허울좋은 작전이 아니라 병사 개개인의 마음속에 들어차는 투지"라고 말했다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묵묵한 노력과 시간투자와 온갖 감정들이 버무려져서 이렇게 또 무언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 불안불안 위태롭게 쉼없이 진행된 이번 공연 준비와, 누구보다도 고생했을 배우들의 노고를 곁에서 지켜보며 전 조금 감동적인 심경이 되었습니다..

자! 여하튼 그렇고! 여러분, 공연 꼭 보러 오십시오! 무지막지한 유머와 재미는 기본이요, 가벼운 웃음거리용 작품이 아니라 이노우에 히사시(이사람 골수 공산주의자라 자처한다고 함. 오에 겐자부로의 친구임)라는 일본 극작가의 뛰어난 희곡을 바탕으로, (제 감상으로는) 언어와 사상과 정치이데올로기의 안타까운 좌절을 그린 이번 연극 <똥과 글의 만남>! 평일 저녁 6시, 토요일 저녁 4시와 7시 공연입니다. 이제 목 금 토 3일 남았군요. 매진은 걱정마십시오. 무대 위로까지 좌석을 늘려드리겠습니다.ㅋㅋㅋ

마지막으로 하나의 이벤트는, 공연이 기대치 이하다 싶으신 분은 보신 후에 04학번 박아무개를 찾으시면 됩니다. 3000원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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