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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SLUMBER

레드마리아: 고마워라 감독의 자의식이여





요샌 블로그가 워낙 활성화되어 내가 이 영화를 언제 봤던지도 정확히 복기할 수 있다. 지난 5월 9일 저녁 8시. 친구와 영화관을 찾았다. 그날은 마침 상영후 성매매 종사자와의 GV도 있었다. 친구가 다음날 일정이 있어서 대담 중간에 극장을 나왔는데, 우리가 나간 후 분위기도 후끈했고 재밌는 얘기가 많이 오갔었군. 성매매 종사자들의 '수위 높은' 솔직한 농담들이 관객들을 많이 웃겨주었단 말이다. 여하튼 그날 영화를 보고 상당히 흥미로워 후기를 남겨두어야지 하다가 오늘 오전에서야 이런저런 메모와 자료들, 인터넷을 돌아보면서 기억을 되살렸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 자신의 그런 감수성을 언어화하는 데 탁월한 사람,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과 일상에서 맞부딪치는 일은 쉽지 않다. 영화를 만든 경순 감독도 아마 정확하게 그런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이 영화의 기획의도와 제작노트, 그리고 지난 봄에 걸친 이 영화의 GV 리스트를 본다면 이 감독이 얼마나 예민하고, 얼마나 욕심이 많으며, 얼마나 '말'에 굶주려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경순 감독은 다른 영화감독들과, 영화인들과, 여성 활동가들과, 여성학 교수와, 성매매산업 종사자들과 만나면서 '여성'에 대해 지치지도 않고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아니, 물론 이런 자료를 찾는 것보단 영화를 직접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레드마리아>에는 한국과 일본, 필리핀을 종횡무진하는, 5년이란 제작기간을 거친, 무려 열 개 내외의 에피소드가 98분 안에 빼곡히 담겨있다. <레드마리아>는 어떤 면에선 너무 난삽하고, 감독의 욕심이 지나친 작품이다. 경순 감독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위선과 모순에 큼지막한 '전선'을 긋는다. 그러나 그 '전선'은 심지어 영화 안에서도 거의 봉합되지 못한 채 꼬이고 충돌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포기하지 않는 정통 다큐멘터리라기보단 감독 자신의 선명한 주제의식을 앞세운 '영상 논문'과 같은 느낌을 준다. 



요컨대 경순 감독은 <레드마리아>에서 이 사회가 분칠한 '여성'을 전방위적으로 거부한다. 그 철저한 부정을 통해 성(性)과 노동을 바라보는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주의적 가치관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게 감독의 목표였던 셈이다.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담기에는 참으로 거대한 기획이다. 말끔한 감동과 카타르시스, 또는 명징한 주제의식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은 어리둥절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또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저는 관객들이 기분좋게 영화를 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실제 우리의 삶이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어느 영화학과 교수의 말이 정확하다.



요즘도 세계를 발 벗고 뛰어다니는 경순 감독에게 존경어린 박수를 보낸다. 세상은 다채로워야 세상이고, 그런 세상이라야 살 맛이 난다. 영화도, 다큐멘터리도. 여자도, 물론 남자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섹스를 가부장주의 사회의 '여성해방'의 '무기'로 사용한다는 식의 성매매 종사자들의 논리엔 별로 동의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