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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남자

미셸 마페졸리에 관하여



전공을 사회학과를 선택했던 걸 여전히,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뼛속까지 사회학적인 사람이다. 장점이든, 단점이든. 그러나 이왕 사회학적인 사람이라면 그 장점을 평생에 걸쳐 가장 원숙하고 선명하게 가다듬어 가기로 하자.




그런 나를 대학시절 가장 흥분시켰던 사회학자라면 미셸 마페졸리를 꼽겠다. 그의 사진을 검색하다가 어느 블로거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인용했던 것을 보았다. "왜 꽃을 피우는지 모르면서도 장미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땅 속 깊은 곳을 흐르는 물길이 있듯 사회구조에도 하찮은 것들을 존재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아래는 오래 전에 블로그에 메모해두었던 그에 관한 짧은 구절. 그의 전기적 특질은, 나의 그것이기도 하리라. 마페졸리의 사진은 드니 루브르라는 사진작가가 찍은 것. 










미셸 마페졸리는 1944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다. 그의 몇 가지 전기적 사항들은 그의 사유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이탈리아인으로서 고향을 떠나 프랑스 남부의 광산촌에 자리 잡았고,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2세로서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고 일생을, 마페졸리 자신이 본인의 저서에서 밝히듯, '프로메테우스 이데올로기'에 바친 광부이다.



그 선조들이 자리 잡은 광산촌은, 그 당시 여러 이유들로 이주해온 이탈리아인들, 폴란드인들, 포르투갈인들 그리고 그 후 알제리인들과 모로코인들이 공존하는 마을이었는데, 이와 같은 조건은 마페졸리에게 고유한 포퓰리즘, 그의 저작 속 '노마디즘' '역동적 뿌리내림' 등의 주제를 짐작하게 해준다. 부인 헬렌 마페졸리가 들려주는 그 당시의 일화들 또한 이와 같은 기원을 되돌아보게 한다. 마페졸리의 삼촌은 그가 태어나기 전 광산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의 부친 또한 작업 중 사고로 척추를 다치고,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된다. 삶과 연결된 '죽음' '비극'의 테마는 마페졸리 저작의 중심을 이루는데, 이는 항상 민중적인 삶의 고락, 자연의 산물들이 주는 기쁨의 향유, 축제의 과도함 등과 함께하는 것들이었다.



이를 마페졸리는 나중에 한 잡지에서 '체화된 지식'이라고 덧붙인다. 예를 들어 마을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마을 사람들은 '체화된 지식'으로 또 한 사람의 광부가 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체화된 지식'에 대한 존중은 그의 전 저작을 관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