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제대로 살 사람은 제대로 살게 되어 있다. 단, 자신을 둘러싼 모든 허위와 거짓된 것들이 걷히고 난 후에. 그 거짓들이 뿌리깊게 심어놓은 아픔들을 모두 겪고 난 후에. 몬티 파이튼의 유명한 노래처럼, 영화 초반의 헬렌의 대사처럼, '언제나 삶의 밝은 면을 바라보는'(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 태도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거짓이 엄연히 활개치는 세상에서는.
그보단 제임스의 말처럼,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서 제임스와 헬렌이 입을 맞출 수 있는 것처럼, '누구도 너의 과거와 인생과 아픔을 다 알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며 그것에 대해 증명할 필요도 없다. 네가 종교재판 따위를 받을 일은 없다'(Nobody expects the Spanish Inquisition)는 사실을 명심하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과거는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으며,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는 결산 장부는 정직하게 당신의 미래에 되돌아올 것이다. 그 후에야 당신의 진실을 알아볼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리라.
허위를 깨는 과정이 너무나 괴로워도, 별 수가 없다. 영화에서는 '또 다른 나의 죽음'이라는 훌륭한 메타포로 그 통과의례를 형상화했다. 진짜 자신을 찾는 일은, 비유컨대, 죽을 만큼 괴롭고 힘든 것이다.
<슬라이딩 도어즈>가 유명한 건 '승강장에서 어떤 지하철을 놓치거나 탄' 지극히 사소한 우연이 얼마나 삶의 많은 걸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명확하고 힘 있는 '단 하나의 이야깃거리', 그리고 기네스 펠트로 같은 여배우만 있으면, 어느 영화인들 안 될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오직 그녀를 위한, 그녀에 의한, 그녀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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