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는 내게도 뼈저리는 영화였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삶, 자신 안에 끓어오르는 영감이 아니라 '대중의 시선'에 영합하려는 삶, 영웅적인 타인을 닮기 위해 헛되이 노력하는 그 모든 삶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영화였다.
거기다가 순수문학이나 순수학문의 길을 택하지 않고 '대중적 글쓰기', '대중과의 소통'을 운운하며 평론이든 뭐든 글줄깨나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더 위험하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든 간에 남의 천재성을 부러워 하며 온갖 사탕발림으로 그 천재들의 재능과 성과에 기생하는 삶을 택할 위험성이 큰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영화를 보면서 프레디 머큐리를 비롯한 여러 천재 뮤지션들의 삶에, 그 숱한 가쉽거리에 눈이 뺏겼던 스스로가 떠올라서 민망해졌다. 머큐리는 한평생 평론가들을 증오했었다.
그렇다고 영화가 천재를 숭앙하는 엘리트주의적 영화였느냐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프랭크는 망가졌다가, 다시 부활한다. 자신이 배신했던 벗들에게 돌아와 "I LOVE YOU ALL"을 노래하면서. 위대하고도 여린 감수성의 프랭크에겐 음악을 온 몸으로 사랑하는, 자신과 오래도록 함께 연주하고 노래할 수 있는, 자신의 위대함을 알아봐줄 수 있는, 순수하디 순수한 괴짜 친구들만이 필요했던 것이다. 빌보드차트와 소셜 네트워크, 음원판매 싸이트의 눈으로 보면 형편없고 퇴락한 무명의 밴드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결국 대중들이 알아주고 말고는 상관없다. 샘솟는 영감과 확신의 근원을 자기 안에 두느냐, 익명의 군중에 두느냐의 차이다. 니체는 말했다. 영혼이 고귀한 사람에게는 두 사람 이상의 친구가 필요없다고. 고귀한 이에게는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영혼 구석구석을 바라봐줄 수 있으며 자신 또한 상대에게 그러한 단 한 사람의 친구가 있을 뿐이라고. 프랭크와 밴드의 관계가 바로 그러했다. <프랭크>는 고귀함에 대한 영화였다. 저 미국 텍사스의 이름없는 바에서 연주하는 무명의 천재들을 위한.
그렇다면 존은? 존은 괴짜가 되고 싶어했지만 괴짜가 되지 못한 반쪽짜리 영혼일 뿐이었다. 그는 (적어도 음악에 관해서는)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비루한 장사꾼일 뿐이었다. 음악을 '인기'로 바라보는 장사꾼이 '인생이 음악 그 자체인' 괴짜 흉내를 내면 남는 것은 파탄뿐이다. 영화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처음 존이 프랭크의 밴드에 합류할 때 매니저인 돈이 했던 의미심장한 대사.
"프랭크는 그날밤 네 안에서 뭔가 '고상하고 소중한'(cherishable) 것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놈의 가면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안 들려서 말이지. 내 생각에 그는 네 안에 '잘 상해버리는'(perishable) 게 있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어. 잘 썩는 과일이나 생선처럼 말이지. (킬킬대며)"
프랭크의 영혼의 동반자라 할 수 있는 클라라는 이런 존의 본질을 알아챈다. 그녀의 괴팍한 비명들의 대사도 끝내준다.
"프랭크를 가만히 놔둬. 너는 별 재능도 없는 어린아이(mediocre childe)일 뿐이야. 넌, 마치 조세프 같아. 텅 비어있어. 텅 비어있다고(Absence, Absence). 그 망할 이름이 뭐였지? 그래, 조세프 프리츨(Josef Frotzl: 친딸을 24년 동안 감금하고 강간하여 7명의 자식을 낳은 오스트리아의 범죄자) 말이야. 이 중간급 관리자(Middle management) 같은 머저리야."
아일랜드의 자연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넌 그냥 중간 관리자로 살아야 할 팔자'라는 일갈은 내 가슴도 찔렀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길을 되찾아가는 존의 외로운 뒷모습은 그가 비로소 한 걸음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훗날 프랭크와 괴짜들은 미국 서부에서 가난하게 늙어가고, 존은 애플 같은 회사의 중역이 되어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삶이 다른 삶보다 더 낫다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아니, 천재라는 말은 그 얼마나 비루하랴.
'GOLDEN SLUMBER'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동식에 대하여 (0) | 2015.06.08 |
---|---|
차이메리카: 어느 젊은 극작가가 이룬 것 (0) | 2015.05.03 |
어톤먼트: 어린아이의 윤리 (0) | 2014.10.05 |
기억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0) | 2013.11.17 |
화이: 괴물은 그리움이다 @nbamania (0) | 2013.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