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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DJ의 야밤선곡

'박DJ의 10시의 선곡표'를 시작하며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여인>, 1897년, 캔버스에 유채



나는 음악이 좋다. 취미로든 직업으로든, 음악을 직접 만드는 것은, 내 가슴 속 한켠으로 밀어 둔 먼지쌓인 목표로 남아있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난 음악이 좋다. 쿵쾅거리는 음악도 좋고 잔잔한 음악도 좋고, 노랫말이 아름다운 음악도 좋고 노랫말이 없는 음악도 좋고, 예쁜 가수가 부르는 음악도 좋고 못생긴 가수가 부르는 음악도 좋다. 나는 '좋은 음악'이 좋은데, 과연 내가 좋아하는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를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이 코너를 만들었다. 나에게 좋은 음악이란 뭘까?


그 옛날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었을 때, 유치원 다니던 시절 바이엘과 체르니를 잡고 뚱땅거리던 때, 서태지의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듣던 때, 마이클잭슨과 백스트리트보이즈의 영어 가사를 한글로 옮겨가지고 자랑스레 외우고 다니던 때, 비틀즈를 처음 들었을 때, 이승환에 미쳤던 때, 김광석과 김민기와 양희은을 사랑했던 때, 오아시스를 비롯한 브리티쉬 락에 푹 빠졌던 때, 나는 꽤나 행복했었던 것 같다. 비록 여유 있던 중산층 2세의 철부지 문화생활이었더라도, 내 어린시절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꽉 붙잡고, 그 행복감을 누리는 힘이 있었다.


고등학교였나, 한창 사춘기를 겪으며 거기다가 집안의 풍랑까지 맞아 순간 판단력이 흐트러졌을지도 모르는 그때, 나는 내 유년의 허세와 철없음을 포맷해버리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는 몇 년에 걸쳐 모아온 CD들을 헌책방에 가져가서 몽땅 다 팔아버렸다. 비틀즈, 메탈리카, 딥퍼플, 레드제플린, 오아시스, 이승환, 전람회, 토이 등등... 고급 레코드샾에서 한장에 만원 이만원씩 주고 샀던 정규 앨범들(몇몇은 희귀본에 속하기까지 했다)을 천원 이천원에 넘긴 것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땅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다. 이 코너는 내 추억을 팔아넘긴 허전함에서 시작되지만, 그 허전함의 힘으로 내 20대가 아름다웠다고... 믿고 싶다.

 
내게 있어 어떤 곡을 좋아한다는 건 그 곡을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일단 가사를 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는 따라불러야 한다. 요새 가사가 잘 안 외워져 큰일났다. 어쨌든 어릴 적부터 노래부르는 걸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왜 내 노래실력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요새는 MP3로 듣던 곡만 자꾸 듣는 것도 질려서 라디오를 애청하고 있는데, 이 라디오란 매체가 참으로 매력적이어서 보물 같은 노래들을 청취자에게 선물해주곤 한다. 물론 나는 공테이프를 걸어두었다가 그 보물들을 '찰지게' 녹음했던 세대는 아니다. 그러나 이 코너를 시작한 심경은 바로 그 '세대'의 아날로그적 설렘과 꼭 같으리라고 생각한다. 라디오에서 그날 내 귀를 즐겁게 해준 음악을 한 곡이나마 기억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아마 거의 찾기 힘들 것이다. 음악에는 인간의 원형적인 심성이 그득하게 담겨있다. 음률의 힘은 사람의 가슴을 기가 막히게 후려치는데, 그러므로 세상의 작곡가와 가수들에게 복 있을지어다. 참으로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고, 시계는 새벽 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다. 10시란 시간을 지키도록 노력은 하겠지만, 이미 시작부터 3시간이나 오버된 걸 보면 상징적인 의미 정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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