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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커스

소처럼 살다





내가 자주 "소백마리 대리님"이라고 놀리는 직장 상사가 있다. (지금은 과장이다.) 고향이 경북 문경인 그는 집에서 대대로 소를 키우고 농사를 지어왔다 한다. 그는 얼굴도 소를 닮고, 성격도 소를 닮았다. 쌍커풀이 짙은 눈은 둥그렇고, 턱선은 너그럽고 튼실하다. 성정도 여유가 있고 품이 넓다. 대학시절, 학생회장이란 '권력'을 이용, 예쁜 대학 1학년 신입생을 낚아채 9년여를 연애하고 결혼했다. 


오늘 밥을 먹으며 오래전 내가 시골에서 클로즈업해 찍은 소의 왼쪽 눈과 왼편 얼굴 언저리를 보여주었다. 그는 대번에 "암소구먼"이라면서, "생긴 게 딱 암소"라고 말했다. 소가 많이 늙었다면서, 수소는 이렇게 늙을 때까지 키우지 않는단다. 얼굴을 덮고 있는 밧줄을 가리키면서는 도망치지 못하게 묶어두는 것이라고 했다. 소를 한 번도 키워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의 무덤덤한 이야기가 재밌을 따름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난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소도 도망을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을 가는 소"는 왠지 익숙지 않은 수식이자 비유였다. 사진 속 암소의 미간을 타고 내려오는 밧줄은 콧잔등까지 이어지고 있었는데, 과장은 "소는 코를 잡으면 꼼짝하지 못한다"고 했다. 코를 잡으면 꼼짝하지 못하는 소라니, 이 또한 재밌으면서도 뭔가 애틋했다. 그 육중하고 착한 몸뚱아리가 영악한 인간에게 코를 잡혀 복종하다니.


이상국 시인의 <축우지변>이란 시가 있다. 밭 갈아 힘든 소의 입장에서 쓴 이 시에서 소는 "세상이 바뀌면/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고 전언한다. 그러고는 어느날 밤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버린다. 영물이라 불리는 소의 신비성이 진하게 배어있는 짤막한 시다. 


오래전부터 '매맞지 않는 소는 소가 아니다'란 생각을 해왔다. 다큐멘터리 <워낭소리>에도 잘 나타나있는 바, 소와 인간은 서로 맞고 때리며 스스로의 질긴 운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소팔자가 그야말로 상팔자라 하지만, 인도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소'라는 동물은 우리의 그것과 완전히 다를 게 분명하다. 미국 사람들과도, 어쩌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과도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에게 소는 '도망가지 않는' 존재이다. 도망가면 풍비박산이 나는,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우골탑이 무너지는, 저 착하고 강인한, 소.


그러니 '소처럼 우직하게 산다'는 그 진부하디 진부한 비유는 얼마나 무섭고도 정확한 말이랴. 그것이 사랑이든, 이념이든, 꿈이든, 그 무엇이든,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 내가 도망가면 네가 망하는구나, 너희가 망하는구나. 자신의 영혼을 '영원히 도망치지 않을' 무엇 하나에 자발적으로 매어두고, 스스로 매맞을 수 있는 인간은 아름답다. 착하다. 범상치 않다. 물론 "소처럼 우직하게"라는 비유를 번지르르하게 떠받들면서도, 한평생 매 맞는 일은 싫어하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자유의 아름다움이 있고, 복종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코를 잡힌 암소는 늙어가고, 소백마리 과장은 집으로 총총 길을 떠났다. 착한 눈을 가진 사람이 좋다. 소의 눈은 볼 때마다 늘 착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