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에 있어서 의정(疑情)의 전환: 고봉원묘(高峰原妙)의 증언
- 로버트 버스웰(UCLA)
불교가 동아시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불교 내에 일어났던 두드러진 변화들 가운데 하나는 인도의 불교 전통에서는 그 정확한 상응체계가 발견되지 않는 중국 특유의 새로운 선 수행체계가 창출됐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온 중국적 체계는 선(禪)으로서, 이는 명상적 지식의 보고로 여겨졌다. 복잡한 발전과정을 단순화하면, 우리는 수행법과 수사법에 있어서 병행된 이 진화가 송(宋, 960-1279)대 간화선(看話禪: 문자적 의미는 화두를 참구하는 선)의 창출로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간화선 수행의 가장 주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의정(疑情)’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이다. 의정 또는 의심이라는 개념은 인도 불교의 정신문화에선 건설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인도 문헌에서 의심은 아주 희미한 몇 가지 암시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방적으로 부정(不正)한 정신적 상태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은 선사들에 의해 동아시아에선 완전하게 평가되고 고찰되었으며, 특히 간화선 수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 수행에 있어서 의정의 ‘정’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유, 느낌, 감정 그리고 심지어 육체까지 고루 미치는 작용을 지각할 수 있는 능동적 감각이다.
완숙기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의심의 역할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때로는 가장 웅변적인 설명은 원(元)대의 중요한 임제종 승려였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9-1295)가 지은 『선요(禪要)』에서 나타난다. 고봉의 간화선 수행에 대한 설명이 가진 가장 영향력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간화선 수행의 주요 요소를 “삼요(三要)”라는 용어로 체계화한 것이다. 고봉에 따르면, 이 삼요는 대신근(大信根: 큰 신심), 대분지(大憤志: 큰 분심), 그리고 대의정(大疑情: 큰 의심)이다. 고봉은 궁극적으로 깨달음[悟]을 얻기 위해 (자신은 본래 깨달아 있음을 증언하는) 불성(佛性)에 대해 온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면서도, (자신은 평범하고 무지한 사람이라는, 현실적인) ‘의심’을 지니는 것을 자연스럽다고 파악했다.
화두 참구를 통해서 일어나는 실존적 의심은 삶 속에서 경험되는 모든 다른 의심들이 합쳐지는 장소가 된다. 이 압도적인 의심의 감각은 수행자에게 강렬한 압박과 동시에 절대적인 용기(분심)를 일으킨다. 이 격정은 의심에 의해 야기된 실존적 위기들을 수행자가 견뎌내도록 해주며, 끝내 그 의심은 폭발하여[破] 몸과 마음에 동일화된 그 수행자의 정체성을 절멸시킨다. 이것이 임제종의 구원론적 체계에서 깨달음이 의미하는 바이다. 고봉은 특히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세속 세계에서 수행을 지속하려는 재가 신자들을 격려했다. 세속적 삶은 좌절, 의심, 그리고 불안 등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적인 장애물들이 어디에나 있으며,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고립된 승려의 힘보다 뛰어난 “힘(力)”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창되었던 것이다.
간화선 국제학술대회의 논문들을 요약해 갈무리해둔 파일이 있었다. 두툼한 자료집은 집에도 챙겨두었으나, 당시나 지금이나 꼼꼼하게 읽진 못했고 눈으로 흘겨보면서 마음에 드는 두 편의 논문을 휙 뽑았던 게 기억난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는 바로 그 KBS 다큐멘터리 <다르마>에도 나왔던 석학이다. KFC 할아버지를 썩 닮았다. 내가 스님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전제 아래, 재가 신자여, 힘을 내라. 의심은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킨다. 의심은 반드시,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켜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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