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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남자

김훈, <내 젊은 날의 숲>






1925년에 태어난 일본 철학자 나카무라 유지로는 이렇게 말했다. "치매에 걸려 대소변 못 가리고 침 흘리는 나의 '추한' 몸을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간 모습의 일부라고 알리고 싶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는 태도는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은 미(美)와 추(醜)를 끌어안고 늙어가는 인간의 벌거벗은 몸뚱아리 앞에선 맥없고 허무하다. 그런 의미에서 끈질기게 그 맥없음과 허무함을 그려내는 김훈의 모든 작품에는 '해부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줄 만하다.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은 젊음에 관한 소설이다. 김훈이 바라보는 인간의 젊음에는 여지없이 늙음의 서늘한 그림자가 어려 있는데, 사실 모든 인간의 관념이 다 그러할 것이다. 아름다움과 추함, 전쟁과 평화, 죽임과 죽음, 미안함과 고마움, 증오와 연민, 인연과 탈주….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끈은, 하나의 숲처럼, 제 안에서 철렁이고 뒤엉키며 생명의 군락을 이룬다. 그러므로 어렵고, 멀고, 자욱하다. "마음의 일은 말하기 어렵다. 마음의 나라는 멀고멀어서 자욱하다. 마음의 나라의 노을과 바람과 시간의 질감을 말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면회가면서 알았다."(11)



김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한 북녘 인근의 숲이, 가장 끔찍한 전쟁의 기억과 젊은 병사들의 유해를 품고있음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황지우의 시구대로, "돌아다녀보면 조선팔도(朝鮮八道), 모든 명당은 초소"(<길> 중에서)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들이 벌여놓은 한국전쟁이란 죄는, 주인공 조연주의 아버지가 하위직 공무원으로서 약자들을 뜯어먹던 비루하고 추잡한 죄와 뗄 수 없다. 한국사의 비극적 에피고넨은 젊은 우리들과 소스라치게 가깝다. 또는, 김훈은 그렇다고 말한다. 가까워야 한다고. 너의 아버지가 남을 밟고 획득한 단물을 먹고 너는 자란 것이다, 그걸 회피하려 들지 마라, 라는 이런 태도는 예컨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인간의 언어에 대해 주저하고 저어하며 '폼'을 잡는 김훈의 문장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아니, 존경스럽다. 그에게 이 세상은 "비논리적인 만큼 절실한 것이어서 오히려 실제 같"(29)아서 언제나 "아리송했고 엉거주춤했다."(36) 김훈은 "명료한 막막함이란 말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48)면서 "들여다보았다니, 꽉 찬 것과 빈 것이 같았고, 다만 말이 다를 뿐이었다"고 한탄한다. 김훈에게 인간이 지닌 "그 결핍은 크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198)이었다.이 세계와 타인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는 영원히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하고,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멀고 자욱한 내면을 거친 그 그리움의 행위에 '사랑'이란 말을 붙여도 무방하리라.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이나 '희망'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 중생의 말로 '사랑'이라고 쓸 때, 그 두글자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와 결핍을 드러내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겁 많은 나는 저어했던 모양이다. 그러하되, 다시 돌이켜보면, 그토록 덧없는 것들이 이 무인지경의 적막강산에 한 뼘의 근거지를 만들고 은신처를 파기 위해서 사랑을 거듭 말할 수밖에 없을 터이니, 사랑이야말로 이 덧없는 것들의 중대사업이 아닐 것인가." (작가의 말)



2년 전쯤 책이 나오자마자 서점에서 정신없이 읽고, 노트에 또 그만큼 정신없게 메모해둔 구절들이 있었다. 질긴 인연과 숙명의 깊이에 진절머리를 내며 세상에서 도망쳤던, 숲을 그리던 조연주에게서 나를 봤다. 이제는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연장자가 됐다며 껄껄 웃던 김훈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김훈이여, 늙지 마라. 



<책갈피>


천국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혹시라도 그와 유사한 마을이 있다면 사람이 여자의 자궁 속에 점지되어 탯줄로 연결되거나 사람끼리 몸을 섞어서 사람을 빚고 또 낳는 인연이 소멸된 자리가 아닐까. 옜사람들이 효를 그토록 힘주어 말한 까닭은 점지된 자리를 버리고 낳은 줄을 끊어내려는 충동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서 불끈거리고 있는 운명을 보아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13)



무수한 이파리들이 바람의 무수한 갈래에 스치면서 분석되지 않는 소리의 바다가 펼쳐졌다. (24)



세상으로부터 겉돌고 헤매는 자들의 메마름이나 황폐함, 그리고 그 불모를 끌어안고 기어이 살 수밖에 없었던 세월이 쌓인 늙음 같은 것 (32)



세상이 돈과 먹이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먹이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먹이사슬의 저 꼭대기에서부터 도마뱀이 꼬리를 끊고 달아나듯이 아래쪽으로 연결된 먹이의 고리를 끊어냈다. 세상이 돈과 먹이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그것들에 의해 차단되어 있는 것인지를 분석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었지만 분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연결인지 차단인지, 나는 말의 뜻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고 또 거기에 무슨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2월에 나는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고 직장을 떠난 실직자였다. ‘일신상의 이유’로 자진사퇴한다는 형식이었지만, 사표를 내지 않았더라도 월급을 받을 수 없었을 테니까 자진사퇴나 해직이나 별 차이 없었다. (43)



구매력이 주는 위안은 생리적인 것이어서 자각증세가 없는데, 그 증세가 빠져나갈 때는 자각증세가 있다. (...) 그래서 내가 도저히 끊어버리고 돌아설 수 없는 것들, 끊어내고 싶지만 끊어낼 수 없는 만유인력과도 같은 존재의 탯줄 그리고 나와 인연이 닿아서 내 생애 속으로 들어온 온갖 허섭스레기들의 정체를 명확히 들여다보려면 돈이 다 떨어져야 한다. 그러니 돈이 떨어진다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가. (47)



습관화된 의문은 의문이 아니고, 습관화된 모든 것은 다만 습관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49)



냄새는 늘 비논리적이면서, 찌를 듯이 달려들었다. (62)



호칭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치정적 인간관계의 낌새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77)



마음이 켜를 이루고 결을 이루면 거기에 무늬들이 뒤엉켜서 가늘고 혹은 날카로운 느낌들 사이의 선후관계를 알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79)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82)



살아있는 것들의 무늬에서는 늘 물기가 흘렀다. (88)



누가 거기에서 분석적 언어를 추출해낼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이 지어낸 언어의 구조물은 그 대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91)



어두워지는 시간에는 먼 것들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94)



삶의 구조와 토대를 이루었던 바닥의 풍경 (94)



숲이 뿜어내는 젖은 입김 (95)



어머니의 말은 늘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 대답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은 담벽에 대고 중얼거리는 헛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 상대는 딸인 나일 수밖에 없었다. (103)



어머니는 자신의 상처로 칼을 만들어서 딸을 찌르려는 것인가. 이 밤중에 핸드폰으로. (106)


봄을 맞는 숲은 짙은 풋내를 풍겼다. (109)



밤에 우는 새들의 울음처럼 그 종족의 핏줄 속에 각인된 무늬처럼 보였다. (109)



서로간에 달아날 수 없고 끊어낼 수 없고 모른다고 할 수 없고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인연의 모습 (113)



춘분이 다가오면 목련의 겨울눈이 부풀어서 벌어진다. 그 안에 빛이 고이고 빛에 실려서 꽃잎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벌어지는 겨울눈 속에 고이는 밝음과 그 쟁쟁쟁 소리를 그리는 것이 내 세밀화에 부과된 임무였다. (116)



숲에서,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는 문 앞에 있었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안쪽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세밀화는 그 기웃거림의 흔적이었다. (120)



사진으로 해보시지 그랬어요?

다 실패했습니다. 오래 삭은 뼈의 내부구조의 느낌이 사진에 담기질 않았어요. 그게 인간의 뼈라는 걸 표현해야 되는데... 아마 연필로 그리셔야 될 겁니다. (153)



아침에 그리려다 못 그린 패랭이 꽃잎이 햇볕을 받으면 쟁쟁쟁, 환청을 울리듯이, 이 뼈를 그리려면 쟁쟁쟁 울리는 기운을 그려내야 할 것이었다. (172)



세 식구가 마주 앉으니까, 포유류의 혈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182)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한 것인가를 (187)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만진다는 말이나 품는다는 말과는 대척점에 있는 반대말이었지만, 그 두 개의 국면이 반대되는 대척점에서 서로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말일 수도 있다고 (187)



그가 잠든 아이를 돌보며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커다란 결핍의 그림자를 깔고 있었다. 그 결핍은 크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198)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의 눈의 물기가 나의 시선에 느껴졌는데, 시각이 아니라 손으로 더듬는 촉각처럼 내 몸에 와 닿았다. (208)



아래도 봐드려야 하니까, 이런 일은 가족들이 못해요. 인연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환자도 편하지요. (255)



무엇이 미안하고 무엇이 괜찮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았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더 분명해 보였다. 미안하다, 괜찮다, 는 오직 그 두 마디만으로도 아버지의 묘비명이 될 것이었다. (258) 



“너네 아버지, 변비가 왔어. 똥이 차돌멩이처럼 굳어져서 간병인이 꼬챙이로 파냈어. 팠더니 쪼가리로 떨어지더래. 새카맣고 딱딱했는데, 거기 밥알이 박혀 있었대. 똥에 물기가 전혀 없는데도 냄새는 칼로 찌르는 것 같대.”



어머니는 아직도 걸리적거리는 그 인연의 끈을 나한테 넘겨버리고 싶지만, 넘겨지지가 않아서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민통선 마을에서는 인연 없는 것들이 나의 생애의 변방에 다가와서 얼씬거리다가 다시 인연 없는 곳으로 흘러갔다.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