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였던가, 마침 읽고 싶던 책이었는데 수업 시간의 자료로 활용되어 즐겁게 읽었던 책이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옛 문서 정리를 하다가 필기해놓은 구절들이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언젠가 츠바이크를 읽으며 이 책도 다시 잡아들어, 완성된 형태의 독후감을 작성하기를 기대한다.
조셰프 푸셰(1795-1820). 동시대를 살았던 외교관 탈레랑(1754~1838)은 그에게 "태어날 때부터의 배신자, 시시한 음모가, 미끈미끈한 파충류, 타산적 변절자, 비열한 경찰근성…" 등의 모욕을 퍼부어댔지만, 소설가 발자크(1799-1850)는 "나폴레옹이 소유하였던 유일한 명대신, 내가 아는 한 가장 강한 두뇌, 모든 표면 뒤에 그토록 깊은 심도를 지니고 있어 그가 행동하는 순간에는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힘들지만 그의 행동이 끝난 후에는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발자크에게 있어서 '위대함'이란 '착함'이 아니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한 인간의 정신적인 힘이었다고.
그는 "스스로는 기회주의자에 지나지 않지만 겁쟁이는 힘없이 질질 끌려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39p) '인간에 대한 멸시'…라고 내가 체크해놓은 부분이 있다.
그는 "근대 최초의 공산주의적 선언"인 리옹의 '훈령'에 관여하였으며… "자유냐 아니면 죽음이냐, 선택은 당신의 자유다 ― 그는 어떠한 잉여도 허용하지 않고 이 잉여의 개념을 단호히 한정하였다."(49p) "피를 보고 겁내지 않고 극단적인 일도 감행하는 진정한 혁명가가 필요하다. 무쇠와 강철로 만들어진 남자가 필요하다."(62p)라면서 反혁명 민란의 '대학살'을 주도함. 이상주의적이고 고결함에 가득 찬 이분법은 언제든 음험하며 '정치적'인 것일 수 있다. 한 인간 내적으로든, 아니면 외적으로든 말이다.
"한번 살인을 이론적으로 시인하면 어쩔 수 없이 살인은 계속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프랑스 혁명의 죄과는 피에 취한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나는 말에 도취한 일이다."(65p) "그림자처럼 단두대의 칼날이 그들의 말의 배후에 붙어다니게 된 후부터 그들은 더욱 침묵을 좋아하게 되었다. (…) 인간대중을 천하게 하는 데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보다 더한 것은 없다."(85p)
츠바이크는 이러한 공포상황을 '몸서리쳐지는 경주'라 표현했는데, 이러한 언급은 사드와 마라, 로베스피에르 등에 대한 자료들, 그리고 린 헌트(『프랑스혁명과 가족 로망스』)와 연결되는 부분일 것이다. 오랜만에 자료도 정리하고, 공부해볼 만한 재미있는 주제다. 언젠가 페터 봐이스의 <마라/사드>를 연출할 수 있다면 더욱….
츠바이크: "책임이라는 것은 거의 언제나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87p)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츠바이크의 진술은 선명하고 뛰어나다. "모든 독단적 정신의 운명은… 완고한 데에만 그의 강점이 있고, 냉엄한 데에만 그의 힘이 존재한다. 독재적인 것이 그에겐 생활의 뜻이고 형식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의 자아를 혁명에 부각시키거나 아니면 그의 자아가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88p) 언젠가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도 읽었었는데 그 독후감은 어딘가에 있을지….
푸셰는 공포정치기에 "비밀에 찬 절망적이고도 위험스러운 막후 역할"(101p)을 맡았고, 그리고, "테르미도르 8일의 아침이 밝아왔다. 세계사적인 날이다."(108p) 테르미도르 9일의 쿠데타―. "테러는 끝났다. 혁명의 열화와 같은 정신도 꺼지고 영웅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후계자의 시기가 왔고, 약탈자와 이중 인격자의 시대, 장군과 자본가의 시대, 새로운 조합의 시대가 왔다. 이제 조제프 푸셰의 시대가 왔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였다."(113p)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한 후, 후계자들은 비겁하고 기만적인 태도만을 보였다고…. 이진곤의 칼럼(국민일보 2000.9.19.)을 보면, "프랑스혁명은 여기서 유턴을 시작했다. 그런데 구질서보다 훨씬 빨리 부활한 것은 향락과 타락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기 무섭게 댄스홀이 파리 도처에서 문을 열었고 매춘부는 ‘예전과 같이 대담하게’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투기꾼, 전시부정이득자, 부패정치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의회 의원들의 부패행위는 공공연해졌으며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세인의 부러움을 샀다."
조셰프 푸셰는 이후 총재정부에서 경찰총감으로 임명되고, 훗날 정치경찰 또는 사상경찰의 원형이 되는 경찰기관을 창설한다. "단 한 사람의 남자가 엄청난 활동력과 심리적인 천재성을 이용하여 불과 몇 개월 내에 무일푼으로부터 만들어낸 이 거대하고 세련된 경찰기관은 이렇게 해서 중단이나 사고 없이 그 기능을 발휘해 나갔다."(141p) 이 기관은 옛날과 같이 "서투르게 목을 치는 도끼가 아니라 불안과 죄의식과 자신의 비밀이 도청되었다는 느낌과 발각되었다는 양심의 개측 등 정신적인 독소"(143p)를 이용하였다고.
푸셰에 대한 츠바이크의 진술: "이중성에 대한 쾌감, 즉 타오르는 듯한 자극과 일인이역의 위험함에 대한 쾌감"(154p)…나폴레옹기의 푸셰는 권력의 정점에서 영욕을 되풀이하나, 결국 나폴레옹 몰락 이후 루이 18세 집권기에 재기하지 못하고 국외추방되어 생을 마쳤다고. 이 시기에는 노트해놓은 언급이 없어 츠바이크의 목소리로 푸셰의 말년을 옮기지 못하지만, 다음과 같은 진술이 하나 있다. "무미건조하고 뼈만 남은 이 시민의 마음 깊이 세계를 무대로 하는 도박의 긴장과 위험에 대한 악마적인 쾌감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180p) 아마 나폴레옹의 눈을 피해 루이 18세와 협력하려던 때의 푸셰인 듯….
글을 읽으며 이거다 싶은 부분을 옮겨적은 것뿐이었는데도, 이렇게 아주 오랜만에 푸셰와 프랑스혁명기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손이 잽싼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역시 무언가를 남겨놓으니 이렇게 훗날 써먹을 데가 있구나. 독후감 꼭 쓰자. ―오늘 여러모로 자료들과 링크들을 많이 '발굴'했는데, 게을러지지 말고 앞으로 좀 충실하게 공부한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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