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 절신 만구 채동구 선생 신도비 고유제(丙子 節臣 萬久 蔡東求 先生 神道碑 告由祭)"
채동구를 기리는 행사를 맡은 외숙의 이야기로 책의 서장은 시작한다.
외숙은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이 일을 도맡음. 비문 쓰는 것 하나도 "말이 간단하지 이렇게까지 되는 데 2년이 걸렸고 서울에 왕복한 횟수만 해도 50여 번이었다." 문중 조상의 고유제 하나에도 이렇게 공이 들어가는 것이다, 소설에 따른다면 말이다….
여하간 '제'를 지낸다는 것. 그 작은 일에도 성실하다면, 공허한 말들의 향연보다는 얼마나 '인간의 힘'이 느껴지는 일인 것인가.
채동구의 조상격인 채담. 인조반정 당시의 일화 한 토막이 나온다. 채담의 맏딸은 지혜롭고 대담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채담이 인조반정의 거사(1623. 3. 12.)에 참석하지 않아 변을 당할까 우려해서 이런 일을 저지른다.
채담의 맏딸은 갑자사화 당시 채담이 연산군에게 치죄당할 때 연산군에게 글을 올려 장형을 태형으로 감하게 한 적이 있는, 기략과 배짱이 있는 여인이었다. (…) 딸은 술을 좋아하는 채담에게 계속 술을 권했고 채담은 곤드레만드레가 되고 말았다. 결국 채담은 만취한 상태로 반정의 현장인 대궐문 앞으로 가마에 실려갔고 엉겁결에 반정의 거사에 참석한 꼴이 되었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그는 "어찌 이게 감히 할 짓이냐"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고 한다.
맏딸의 담대한 배짱과 채담의 한 마디 말이 실로 유쾌하였다. ㅋㅋㅋㅋㅋㅋ
당시의 사대부들은 의관지제와 성현지도를 국가나 민족보다 우선시했다고. 『주자가례』의 상중법도는 지루할 만큼 구구절절 소개돼있었다. 목욕, 염습, 설전(設奠), 반함(飯含), 소렴(小殮)과 대렴(大殮), 성복(成服) 등등과, 다시 조곡(朝哭)과 상식(上食)과 소상(小祥)과 대상까지….
읽는 도중 조금 역겨울 정도로 조선시대 양반들의 법도는 가관이었다. 작가도 이를 노렸을 게다. 아무튼 세세한 예법이 어떻든간에, 인간의 힘은 허식적인 절차와 장식과 수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 부인으로 온 동구의 어머니와 동구가 고생한 역력한 꼴. 동구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의 차별적이고 굴욕적인 장례.
인조 5년(1627) 청태종 3만의 군사로 조선을 침공(정묘호란).
"인조는 할아버지인 선조가 그랬듯 급히 분조(分朝)하여 세자를 전주로 보내고 자신은 강화도로 옮겨갔다."
이 즈음(1653~1666) 조선에 억류되어 있던 네덜란드人 헨드릭 하멜은, "조선 백성은 여자같이 나약한 백성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들이 이야기해주었는데 자신들의 왕이 일본인에게 살해되었는데도 마을과 성을 불태우고 파괴했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한 뒤, "타르타르 인들이 얼음을 건너와 이 나라를 점령했을 때 적과 싸우다 죽은 군사보다 산으로 도망해 목을 매어 죽은 군사가 더 많았다고 벨테브레가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살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식으로 자살을 한 병사들을 오히려 동정해줍니다." 하멜 표류기의 인용. 서양인의 눈에 비친, 흥미로운 조선의 모습. 情 또는 恨의 정서?
인조 14년(1636) 12월 1일 청태종 몸소 전쟁에 나섬. 병자호란의 시작과 끝. 고관장성들의 태만과 직무유기.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을 위주로 작가는, 굴욕과 패망과 절망으로 굴러떨어진 나락의 역사를 서술하다.
채동구를 출세하게 해주는 마지막 출도의 장면.
"후일 13명의 정승과 수를 세기도 힘든 숫자의 판서가 나와 '금관자가 서 말'이라는 세도가 안동 김씨 일문의 조상이 되는" 김상헌, 그리고 명문가의 자제로 약관에 생원, 서른 살에 문과 정시에 장원한 준재 조한영과 함께.
그러던 중에 김상헌이 부인상을 당했다. 동구가 손수 상복을 마름질해서 지어주었는데, 조금도 예법에 어긋남이 없었다. 김상헌이 "내가 그대의 현명함은 일찍 알았지만 이처럼 예법까지 익혔을 줄은 몰랐다"고 고마워했다. 이때부터 김상헌은 대소사를 모두 동구와 의논해서 처리하게 되었다. 이처럼 추상적인 것보다는 실제적인 일에서 능력을 보이는 것이 동구의 장점이었다> <효종 임금이 승하하고 인산(因山)을 할 때에 긴 깃대가 갑자기 부러지자 나서는 사람이 없었는데, 동구가 뛰쳐나와 새끼로 묶어서 행차가 나아갈 수 있게 하여 모든 사람이 감탄했다. 이처럼 임기응변에 능하고 실제의 일에 충실한 점만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중에서 일이 벌어지면 앞으로 뛰쳐나오는 버릇도.
마지막 외숙의 말.
"난 이 어른이 뭘 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남들은 우습다고 하고, 미쳤다고도 했지만 어른은 신념을 지키셨네. 신념이 옳다 그르다가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변함없이 그걸 지킨 것, 난 바로 그게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주제도 익숙하고, 길지 않은 분량에 역사적인 서술의 비중도 커서 여러 모로 습작 냄새가 났던 작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채동구라는 인물은 내 전생, 혹은 이생의 한 조각으로도 느껴졌으며… 태생적인 주변인으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먹고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해보게 했다. <東求>라는 이름을 가진 주변인. 그러니깐, 제 스스로 어떤 개인적 · 사회적 ·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고 믿고 있는, 혹은 그렇게 운명지어졌다고 믿게 되어있는 인간 유형에 대해서.
'책 만드는 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시퍼 이펙트 메모 (0) | 2008.10.17 |
---|---|
<언니네 방 2>를 읽고 (0) | 2008.10.09 |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 (0) | 2008.09.25 |
슈테판 츠바이크: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中 (0) | 2008.09.16 |
카를 융 자서전: 기억 꿈 사상 (0) | 2008.07.30 |